처서가 지난 지 보름이 다 돼 가는데 여름은 물러갈 줄 모르고 하염없이 비만 내린다. 올 해는 장마가 길어도 너무 길다. 멍하니 튓마루에 걸터앉아 먼 산을 바라본다. 안개가 온 산을 하얗게 덮고 고요한데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수 소리 똑똑.
조금 전 EBS에서 "돈으로부터 해방될 수는 없는가?" 라는 제목으로 방송해서 관심을 가지고 시청했다.
39살 한 여인은 3년 전 남편이 죽고 남기고 간 빚 70억을 짊어지고 아이 하나를 키우고 있다고 한다.
23살의 젊은 여인은 1년 전 이혼하고 아이 둘을 키우는데 빨리 돈을 벌어서 아이들에게 잘 해주고 싶다고 한다.
아버지의 빚 20억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26살의 젊은 처자 역시 빨리 빚을 청산하고 가족과 오손도손 살고 싶은 게 꿈이라고 한다.
조언을 주기 위해 출연했다고 하는 소위 전문가 세 사람. 대학 교수, 컨설턴트, 강연자로 잘 알려진 어느 여성이다.
나는 이들이 돈으로부터 해방되는 방법을 알려줄 줄 알았다. 그들은 하나 같이 어려움을 딛고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한다. 즉, 열심히 하면 된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직장도 못 구하는데 뭘 열심히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그나마 대학 교수라는 사람은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파산신청과 같은 구제신청을 통해 빚을 탕감하거나 절감하는 방법이다.
그렇다. 아무리 깨달음을 얻은 사람일지라도 현실을 벗어날 수는 없다. 아무리 돈과 가난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할지는 모르지만 현실적으로는 매일 독촉장이 날아오는 것으로부터는 해방되지 않는다. 따라서 대학 교수가 알려준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현실적인 빚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존재가 안정될 수 있으니까. 존재가 안정되어야만 내면으로 들어가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지켜볼 수 있는 주시자가 될 수 있다.
지금 짊어지고 있는 빚 때문에 소중한 존재를 훼손시키지 말자. 가지고 있는 빚이 얼마가 되든 최대한 벌어서 갚고 그것이 안될 때는 구제의 힘을 빌려서라도 갚자.
그리고 이 이후로는 다시는 세상이 존재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자. 하지만 나의 깨달음을 절대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도록 배우처럼 연기하면서 살아야 한다.
오두막 처마끝에서 내리는 낙수 소리 감상하세요. 아래 파란색 글자를 누르면 동영상이 재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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