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쪼는 새부리 소리 경쾌한 우수절 아침
나무를 뱅글뱅글 돌며 미끄럼 타듯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 새 한 마리. 따다다다닥! 나무 치는 소리 경쾌한 우수절 아침이다. 초목이 새싹을 틔우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듯 하다. 산천초목은 가을부터 묵은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내 드디어 새 생명으로 태어나기 직전이다. 나도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지 묻게 된다.
존재를 가리고 있는 증오, 질투, 좌절, 불안, 두려움, 욕심, 탐욕 같은 비본질적인 것들을 벗겨내고 새로운 아기로 태어날 준비가 되었는가?
순간 순간이 죽음과 탄생이라는 사실을 알기까지 육십년이 걸렸다. 날숨과 들숨 처럼 죽음과 탄생이 일어난다. 그 결과 존재는 텅 빈 상태가 된다. 이 텅 빈 상태가 깨달음이고 부활이다.
순간 순간을 텅 빈 상태로 존재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아주 작은 틈만 보여도 침투해 온다. 어지간히 깨어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일거수일투족 깨어 있어야 한다. 걸음걸이, 손동작, 눈동작, 말 한마디, 숨소리까지 깨어 있는 상태에서 행해져야 한다. 비본질적인 것이 끼어들 수 있는 틈을 주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할 수 있다.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본질적인 텅 빔과 만날 수 있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텅 빈 순간 만큼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어떤 희열을 가져다 준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비본질적인 것과 싸움을 통해서는 절대 벗어날 수 없다. 다만 가만히 지켜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나타나고 사라지는 지를 잘 지켜봐야 한다. 작동 원리를 잘 알고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그들이 발동 하더라도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슬기로움이 쌓이고 쌓여서 텅빈 상태를 점점 더 오래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이 상태를 오래 유지 할수록 지금까지 맛보지 못했던 자유와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진정한 자유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돈이나 권력 혹은 명예와 같은 외부적인 것들로 얻어지지 않는다.
텅 빈 상태야 말로 최고의 경지다. 붓다가, 예수가, 마호메드가, 노자가, 장자가 똑같은 경험을 했다. 그들은 그 누구 보다도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았고 지금도 살아서 모든 존재와 함께 하고 있다. 다만 인간이 무지해서 느끼지 못할 뿐이다.
그들 모두 인간이다. 그러니 인간이면 다 할 수 있다. 정진하고 정진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