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도_18 수레 만드는 자의 지혜

slowmrlee 2019. 7. 25. 11:21

원문

 

나라의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환공이 어느 날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마침 수레 만드는 목수인 윤편이라는 자가 뜰에서 수레바퀴를 깎고 있었다.

윤편이 문득 망치와 끌을 내려놓고 일어나더니 환공에게로 다가와 물었다. "좀 여쭙겠습니다만, 왕께서 지금 읽고 계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환공이 대답했다.

"성인들의 말씀이다."

윤편이 다시 물었다.

"그럼 그 성인들은 살아 있습니까, 죽었습니까?"

환공이 대답했다.

"오래전에 죽었다."

그러자 윤편이 말했다.

"그렇다면 왕께서 읽으시는 것은 옛사람이 남긴 찌꺼기이군요."

환공이 화가 나서 말했다.    

"수레 만드는 목수인 주제에 무엇을 안다고 떠드는 것이냐? 네가 지금 한 말에 대해 이치에 닿는 설명을 하지 못하면 목숨이 없어질 줄 알라."

그 수레 만드는 자가 말했다.

"저는  어디까지나 제 일에서 얻은 경험으로 미루어 말한 것일 뿐입니다. 수레바퀴를 깎을 때 너무 깎으면 헐렁해서 쉽게 빠져 버립니다. 또 덜 깎으면 조여서 들어가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더 깎지도 덜 깎지도 않게 적절히 손을 놀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바퀴가 꼭 맞아 제가 원하는 대로 일이 끝납니다.

그러나 그 기술은 손으로 익혀 마음으로 짐작할 뿐 말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 요령을 심지어 제 자식놈에게조차 가르쳐 주지 못하고 있으며 자식놈 역시 저에게 배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나이 일흔이 넘어서도 제 손으로 수레바퀴를 깎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옛날의 성인들도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진정으로 깨친 사실을 아무에게도 전하지 못한 채 죽어갔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왕께서 지금 읽으시는 그 글이 그들이 뒤에 남기고 간 찌꺼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원문 이해

 

시골길을 달리던 자동차 한 대가 엔진 고장으로 정지했다. 차에서 내린 운전수는 차의 앞뚜껑을 열고 내부를 살폈으나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그때 문득 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한테 물으면 고장의 원인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지."

그는 깜짝 놀랐다. 그곳엔 자기 혼자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고 근처 밭에 서 있는 늙은 말 한 마리뿐이었다. 그는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어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20분 쯤 뒤 한 주유소에 도착한 그는 숨을 몰아쉬며 주유소 주인에게 설명했다.

"근처엔 말 한 마리가 있을 뿐 사람이 전혀 없었는데 갑자기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소."

주유소 주인이 물었다.

"혹시 검은 색 털에 잔뜩 굽은 등에 안짱다리 말이 아니던가요?" 

그가 대답했다.

"그렇소, 바로 맞았소."

그러자 주유소 주인이 말했다.

"그 말에 대해선 신경 쓰지 마시오. 그 말은 오래전에 죽은 철학자인데 지금도 그 장소 주위를 배회하고 있는 것이라오. 과거의 습관 때문에 아직도 자기에게 질문을 던져 줄 사람을 찾아다니고 있소. 그는 자동차 엔진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오. 그는 말이 아니라, 단지 그 늙은 말을 영매로 사용하고 있는 철학자인 것이오. 그러니 그 말에 대해선 신경 쓰지 마시오."

삶의 모든 길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늙은 유령들이 계속 쫓아다니고 있으며, 그들은 모든 해답을 안다. 그대는 질문만 하면 된다. 질문을 던지는 순간 그들은 해답을 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삶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그들은 엔진 고장에 대해선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삶은 순간에서 순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러므로 과거로부터는 해답을 구할 수 없다. 오늘 이 순간은 어제의 이 순간과 같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과거로부터는 결코 해답을 구할 수 없다. 해답은 물건이 아니다. 해답은 그것을 발견한 사람의 죽음과 더불어 사라진다.   

그러나 유령들은 언제나 쫓아다닌다. 그대가 읽는 베다 경전, 코란, 성경, 바가바드 기타......... 그것들은 유령들이다. 그것들은 이제 실체가 아니다. 오래전에 죽은 것들이다. 하나의 허상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먼저 이것을 이해하라. 왜 죽은 것들이 그토록 매력을 갖는가를. 왜 죽은 과거가 그토록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가를. 왜 죽은 자가 그대의 발목을 잡아당기고 있는가를.

그대는 왜 그들을 간직하는가? 왜 그들에게 귀기울이는가? 그대는 살아 있고, 새로운 인간 존재다. 그런데 왜 과거에게, 권위가에게,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는가?

첫 번째 이유는 죽은 지 오래된 사람일수록 그 전통이 위대해 보인다는 것이다. 시간은 허상을 만드는 재주꾼이다. 장자가 생존해 있을 때 그대는 그를 인정할 수 없다. 그에게 아주 너그러이 친절을 베푼다 해도 그의 설법을 한 번 들을까 말까다. 듣긴 들어도 그가 깨달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그가 궁극의 앎을 깨쳤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도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인간 존재로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피와 살을 가진 인간,  

그대와 똑같이 늙고 병들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 그대와 마찬가지로 죽음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똑같은 인간으로........ , 그런 사람이 궁극의 앎을, 불멸성에 이르렀다는 것을 어떻게 믿겠는가? 어려운 일이다.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믿으라고 자신을 강요한다 해도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마음의 깊은 곳에선 의심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25세기가 지났다. 장자는 더 이상 살과 피를 지닌 인간이 아니다. 그는 이제 병들지 않으며, 배고파 하지 않는다. 음식이 필요 없다. 약도 필요 없다. 이제 그는 죽지 않는다. 불멸의 존재가 되었다.

시간이 모든 허상을 연출해 낸다. 그리하여 그대는 그가 자신과 똑같은 인간 존재라는 사실을 서서히 잊는다. 죽은 이미지가 서서히 황금빛으로 변한다. 그는 그 황금빛 이미지를 갖고 점점 더 높이 올라가서 낙원 어딘가에 숭고하게 자리 잡는다. 이제 그대와 그의 귀한 존재와의 거리는 무한히 멀어진다. 이제 그대는 그를 믿고 숭배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가 끝없이 사람들을 뒤쫓고 있는 것이다. 붓다가 다시 세상에 오면 사람들은 그를 거부할 것이다. 예수가 오늘날에는 숭배받지만 살았을 적에는 십자가에 처형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살아 있으면 사람들은 그를 처형한다. 죽으면 비로소 숭배하기 시작한다. 

왜 죽음이 그를 그토록 중요하고 의미있는 존재로 탈바꿈시키는가? 죽음은 그의 육체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대와의 공통점이 사라진다. 그때 그대는 그에 대하여 영적인 이미지를 갖기 시작한다.

피도 없고, 뼈도 없고, 초육체적인 이미지를, 이제 그대는 자유롭게 상상을 펼칠 수 있으며, 그에게 어떤 특성을 부여하는가는 그대에게 달려 있다. 그를 구세주라고 생각하든, 큰 깨달음에 이른 인물이라고 생각하든, 신의 화신이라고 생각하든 그것은 이제 그대 자유다. 이제 그대는 마음대로 자신의 생각을 그에게 투영할 수 있다. 그가 살았을 때는 그것이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그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문제는, 장자는 살아 있을 때만이 그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장자가 살아 있을 때, 그대는 그의 정신을 마실 수 있다. 장자가 살아 있을 때, 그때 무엇인가 전수가, 전달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가 죽었을 때 그것은 더욱더 불가능해진다.    

          

왜인가? 전달될 수 있는 그것은 언어를 통해서는 전달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언어로 전달될 수 있다면, 거기에 경전이 있고, 장자의 연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언어를 통해선 전달이 불가능하다. 언어는 하나의 구실 뿐이다.

장자가 그대에게 말을 한다. 그것은 마음의 차원과 접촉하기 위한 하나의 구실 뿐이다. 그대가 열려 있으면 무엇인가 끊임없이 일어난다. 언어 사이에서, 행간 사이에서 장자가 그대에게 가 닿는다. 그것은 하나의 살아 있는 체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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