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_19 장자의 죽음
원문
장자가 임종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제자들은 성대한 장례식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장자가 말했다.
"나는 하늘과 땅으로 나의 관을 삼을 것이다. 해와 달은 나를 보호하는 한 쌍의 옥이 될 것이며 행성과 별무리들이 내 둘레에서 보석처럼 빛날 것이다. 그리고 만물이 내 장례식 날 조문객들로 참석할 것이다.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한가? 모든 것은 두루 돌보아진다."
제자들이 말했다.
"우리는 까마귀와 솔개들이 스승님의 시신을 쪼아 먹을까 두렵습니다."
장자가 말했다.
"그렇다, 땅 위에 있으면 나는 까마귀나 솔개의 밥이 될 것이다. 그리고 땅속에서는 개미와 벌레들에게 먹힐 것이다. 그러니 왜 그대들은 새에게 먹히는 경우만 생각하는가?"
원문 이해
삶도 단순하고 죽음도 단순하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모든 것을 문제로 여기고, 그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일단 모든 것을 문제라고 여기는 순간, 그때는 어떤 것도 해결될 수가 없다. 이미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기 때문이다.
삶은 매우 단순한것, 죽음 또한 단순하다. 그러나 그대가 마음에 사로잡히지 않고 볼 때만 그렇다. 일단 마음을 끌어들이기만 하면 그때 모든 것은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매 순간 삶이 그대의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그대는 머리로 궁리하고 있다. 그대는 삶에게 말한다. '기다리라, 내가 문을 열어 주겠다. 그러나 먼저 결정 내릴 시간을 달라.' 삶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평생토록 삶이 그냥 왔다가 간다. 그대는 살아 있지도 않고 죽어 있지도 않은 채 다만 고달프게 질질 끌려갈 뿐이다.
삶과 죽음은 둘 다 좋은 것이다. 삶에도 그 자체에 아름다움이 있고, 죽음에도 그 자체에 아름다움이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삶은 하나의 문제다.
그러므로 죽음 또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그것을 해결하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한다. 사실 그것은 이미 해결된 상태다. 애초부터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 문제를 만들어 낸 것은 다름 아닌 그대 자신이다.
별들을 보라. 거기에 문제는 없다. 나무들을 보라. 거기에 어떤 문제도 없다. 주위의 모든 것을 보라. 인간이 없었다면 모두 다 이미 해결되어 있었을 것이다.
어디에 문제가 있는가? 나무들은 누가 세상을 창조했느냐고 결코 묻지 않는다. 나무들은 단순히 생명 에너지를 누리고 있다. 누가 세상을 창조했는가 하고 묻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리고 누가 창조했든 무슨 차이가 있는가? 갑이, 을이, 병이, 정이...... , 그것이 무슨 차이인가?
또 그것이 창조되었든 창조되지 않았든 무슨 차이인가? 갑이 창조했다고 해도, 을이 창조했다고 해도, 아니면 아무도 세상을 창조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것이 그대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그대는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존재할 것이고, 삶은 여전히 같은 식으로 진행될 것이다. 그러므로 왜 불필요한 질문, 무의미한 질문을 하는가? ㅡ
그리고 왜 그 속으로 휘말려드는가?
강은 자신이 어디로 흘러가는가 물어봄 없이 흐름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하여 강은 바다에 이른다. 만일 강이 질문하기 시작했다면 바다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강의 에너지는 도중에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강은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가 목적지인지, 그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 묻지 않는다. 그것을 묻는다면 그 문제에 사로잡혀 결국에는 미쳐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강은 어느 곳을 향해 가고 있는지 염려하지 않고 흐름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강은 어김없이 바다에 이른다.
나무와 강물도 이런 기적을 행할 수 있는데 왜 그대라고 할 수 없는가?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는데 왜 그대는 걱정하는가? 그것이 일어나게 내버려 두라. 이것이 곧 장자 철학의 핵심, 장자의 도다.
강물이 도달할 수 있다면 인간도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무들이 도착한다면 인간도 도착할 것이다. 이 생명체 전체가 움직이고 있으며, 그대 또한 그것의 일부다. 생각으로 궁리하지 말라. 생각에 붙잡히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생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맴돌다가 결국에는 흐름을 잃을 것이다.
최종적인 목적지는 끝내 다가오지 않는다.
그대가 관념을 통해서 보기 때문에 삶은 하나의 문제가 된다. 관념 없이 본다면 삶은 하나의 신비다. 관념을 통해서 보면 삶은 이미 죽어 있다. 그리고 그대가 관념을 초월해, 무심을 통해 본다면 삶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마음의 관념은 살아 있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마음은 오직 죽은 것, 물질만을 파악할 수 있을 뿐이다. 그때 삶이 물질적인 차원으로 전락한다..
이제 장자가 임종을 맞이하게 되었다. 죽으면서 그는 무엇을 말했는가? 장자 같은 도의 사람이 죽음을 맞이할 때 제자들은 절대적으로 침묵해야 한다. 그 순간을 놓쳐선 안 된다. 도의 사람의 죽음은 삶의 절정, 하나의 클라이막스이다.
장자는 삶의 절정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한 인간의 의식이 절대적 차원에 이르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그때 제자들은 침묵을 지켜야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지켜보아야 한다. 장자를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관념이 끼어드는 것을, 어리석은 질문이 시작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