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_9 현자는 도 속에 숨는다
원문
진정한 도의 사람은 어떻게 아무 걸림 없이 벽을 뚫고 걸어가며 불타는 일 없이 불 속에 서 있는가?
그것은 영리함이나 대담함 때문이 아니며 그것을 배웠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그가 배움을 버렸기 때문이다.
그의 본성은 그것이 뿌리로 내려가 하나가 된다. 그의 생명력, 그의 힘은 비밀스런 도 속에 숨는다.
그가 완전한 하나일 때 그에게는 쐐기가 들어갈 조그만 흠조차 없다.
술취한 이는 마차에서 떨어져도 긁히기는 하지만 죽지는 않는다. 그의 뼈는 다른 이들의 뼈와 같지만 그의 떨어짐은 다르다.
그의 마음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는 자신이 마차를 타고 있다거나 마차에서 떨어진다거나 하는 의식이 없다. 삶과 죽음이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어떤 위험도 모른다. 그는 생각이나 근심 없이 장애물을 만나고 그것들이 그곳에 있는지도 모르는 채 그것들을 뛰어넘는다.
만일 술 속에 그런 안전함이 있다면
도 속에는 얼마나 많겠는가? 현자는 도 속에 숨는다. 어떤 것도 그를 건드릴 수 없다.
원문 이해
장자는 말하고 있다. 진정한 도의 사람은 어떻게 아무 걸림 없이 벽을 뚫고 걸어가며 불타는 일 없이 불 속에 서 있는가?
이것은 가장 근본적이고 비밀스러운 가르침 중 하나다. 우리는 대개 교활함과 영리함, 그리고 전략을 통해 산다. 어린아이처럼 순진무구하게 살지 않는다. 계획을 세우고 방어하고 가능한 모든 안전 장치를 주위에 설치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인가? 결국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모든 방어벽은 무너지고, 모든 영리함은 곧 어리석음을 증명한다. 마침내 죽음이 우리를 데려간다.
도의 세계에서는 말한다. 영리함은 결코 그대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결국 전체에 대항하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누구에 대해 영리한 것인가?
자연에, 도에, 신에 대해? 자신이 누구를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대가 태어난 근원과 마침내 가게 될 근원? 파도가 바다를 속이려 하고 있는가? 나뭇잎이 나무를 속이려 하고 있는가? 구름이 하늘을 속이려 하고 있는가? 그대는 누구를 속이려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누구와 겨루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일단 이것을 이해하면 사람은 순수해진다. 영리함과 전략들을 버리고 단순히 받아들인다.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과 함께 흘러간다. 그때 그곳에 어떤 저항도 없으며, 그는 다만 깊은 신뢰 속에서 아버지와 함께 가고 있는 아이와 같다.
진정한 지성은 영리함이 아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다르다. 진정한 지성은 사물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다. 사물을 깊이 들여다볼 때마다 그대는 자신이 다만 한 줄기의 파도임을, '전체' 는 바다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전체' 가 그대를 만들어 냈고, 그것이 그대를 돌볼 것이다. 그대는 '전체' 로부터 나왔고, 그곳에 적은 없다. 그대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계획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대가 걱정하지 않고 계획하지 않을 때, 그때 처음으로 삶이 시작된다. 처음으로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삶이 그대에게 일어난다.
이 지성이 종교다. 이 이해가 그대에게 더 많은 신뢰를, 마침내는 완전한 신뢰를 준다. 이 지성은 그대를 궁극의 자연스러움으로, 절대적인 받아들임으로 이끈다. 붓다가 타다타,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 이라고 부른 것으로, 붓다는 말했다. '일어나는 것은 무엇이든 일어난다. 그 밖의 다른 것은 일어날 수 없다.' 그 밖의 다른 것은 불가능하다. 다르게 되길 요구하지 말라. 해방 속에 있으라. 그리고 '전체' 로 하여금 일하게 하라. '전체' 로 하여금 일하게 허용할 때, 그대가 아무런 저항도 장애도 일으키지 않을 때, 그때 그대는 패배할 수 없다.
그대가 욕망을 갖고 있을 때 그대의 존재는 그 속에 헛점을 갖는다. 질투와 미움과 성욕에 차 있을 때 그대는 더 이상 에너지의 기둥이 아니다. 그래서 붓다는 욕망을 버리라고 가르쳐 왔다. 욕망을 버린 상태가 될 때 에너지는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고 안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부에서 순환하는 흐름이 된다. 그것은 하나의 자장, 생명의 자장이 된다. 어떤 새어 나가는 구멍도 없이 그 자장이 그곳에 있을 때, 그대는 에너지 기둥이 된다. 그때 누구도 그대를 패배시킬 수 없다. 그러나 그대는 또한 승리를 생각하고 있지도 않다.
기억하라. 승리를 생각하는 순간 에너지 기둥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때 그 욕망이 하나의 구멍이 된다.
그대가 약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강하기 때문이 아니다. 너무도 많은 욕망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약한 것이다. 그대가 패배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더 뛰어나고 영리해서가 아니다. 그대가 너무 많은 존재의 구멍들을 갖고 있기 때문에 패배하는 것이다.
타다타, 받아들임, 전적인 받아들임은 욕망이 사라진 상태를 의미한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않음으로부터 욕망이 생겨난다. 그대는 어떤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래서 욕망이 생겨나는 것이다.
한 번 욕망이 움직이면 에너지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욕망으로 인해 약해지고, 욕심으로 인해 허약해진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다만 만족할 때, 아무것도 마음 속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을 때, 그대의 전 존재가 고요할 때, 그때 장자는 말한다. '그대는 무너뜨릴 수 없는 성벽이다.' 불은 그대를 태우지 못한다. 죽음 불가능하다. 그것이 곧 '불은 그대를 태울 수 없다' 의 의미다. 죽음은 불가능하다. 그대는 죽을 수 없다. 영원한 생명의 비밀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대가 거리에서 술꾼처럼 쓰러져 보라. 그대는 즉시 골절상을 입을 것이다. 술꾼은 매일 낮, 매일 밤에 여러 번 쓰러진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문제가 무엇인가? 그 비밀이 무엇인가? 그가 취해 있을 때 그곳에 아무런 욕망도 없다. 그는 절대적으로 평화롭고, 지금 이 순간 속에 존재한다. 취했을 때 그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떤 공포도 없다. 그리고 두려움이 없을 때 머리로 계산하는 일도 없다.
머리의 계산은 두려움으로부터 나온다. 그래서 누군가 두려움에 차 있을수록 그에게서 더 많은 교활함을 발견할 것이다. 열등한 사람일수록 더 많이 교활하다. 우월한 사람일수록 더 많이 순수하다. 교활함은 하나의 대체물이다. 사람이 술에 취하면, 완전히 취하면, 미래가 사라지고 과거가 사라진다.
사람이 취했을 때 술은 많은 힘을 준다. 도는 어떤가? 절대적인 술 취함인가? 크리쉬나나 붓다는 어떤가? 위대한 술꾼인가? 신에 취해, 에고의 자취조차 남아 있지 않은? 그대는 그들을 상처 입힐 수 없다. 그들이 그곳에 없기 때문이다. 그대는 그들을 모욕할 수 없다. 그 모욕에 저항하고 상처를 입을 누군가가 없기 때문이다.
그대의 모욕은 그들을 그냥 통과해 지나갈 것이다. 마치 빈 집을 지나가는 것처럼, 그들의 배는 비어 있다. 바람이 불어들어와 아무 장애 없이 지나간다. 바람이 가버렸을 때 그 집은 바람이 그곳에 있었는지조차 깨닫지 못한다.
술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 순간 그대 두뇌의, 육체의 화학적 변화를 통해 그대 자신을 잊게 한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적이다. 몇 시간 뒤면 화학적 효과는 사라지고, 그대의 육체는 술기운에서 벗어나고, 에고가 또다시 자기를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 영원한 술이 있다. 신이 그 술이다. 그것을 도라 부르든 무엇이라고 부르든, 일단 그것을 맛보면 에고는 영원히 사라진다. 아무도 그 술취함에서 깨어나지지 않는다.
가능하다면 그대 존재를 깊이 들여다보라. 그대는 어디에서 왔는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누구와 왜 싸우고 있는가? 그대가 싸우면서 놓치고 있는 지금의 이 순간들은 환희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