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한줄

봄볕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네 명자꽃망울

slowmrlee 2022. 2. 14. 13:25

마당 한 켠에 있는 명자나무에 올망졸망한 꽃망울이 맺혔다. 아직 쌀쌀한 탓인지 서로 봄볕을 쐐겠다고 고개를 내민다. 

꽃들은 머리를 내밀고 새들은 짝을 찾고 바람은 계곡을 녹인다. 새 생명을 탄생 시키기 위해 모두가 바쁘다.

새로운 탄생! 봄은 그런 계절인가 보다. 자연은 순간 순간 새로 태어남을 거듭한다. 어제와 같은 오늘은 하나도 없다. 어제의 꽃망울이 오늘은 활짝 핀 꽃으로 태어난다. 

인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자연의 한 구성원이니까. 어제의 친구는 오늘의 친구가 아니다. 조금 전의 아내는 지금 이 순간의 아내가 아니다. 인간도 순간 순간 다시 태어남을 반복하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모든 것을 고정된 시선으로 바라본다. 한 번 나쁜 짓을 한 사람은 평생 나쁜 사람으로 인식한다. 죄를 짓고 감옥에 갔다 온 사람은 죽을 때까지 죄수로 취급한다.

붓다의 일화를 들어 보면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붓다가 제자 아난다와 길을 가는데 한 남자가 다가와 붓다에세 침을 뱉고 가 버렸다. 아난다는 붓다에게 '제가 그 남자의 버릇을 고쳐 놓겠습니다.' 이에 붓다는 말했다. '아난다야! 아직도 모르겠느냐?' 그래도 아난다는 스승께서 말씀하시는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남자는 잘못을 깨닫고 붓다에게 달려가서 엎드려 말했다. '죽을 죄를 졌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붓다는 그 남자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운 후 말했다. '침을 뱉은 어제의 그 남자는 없다. 그리고 나 또한 어제의 나가 아니다. 그러니 가라.' 고 하셨다.]

침을 뱉은 남자는 새롭게 태어났다. 화가 난다고 해서 침을 뱉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을 깨우쳤다. 그는 다시는 그런 잘못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부활했다. 예수가 말했던 바로 그 부활인 것이다. 

조금 전에 아들에게 화를 낸 어머니는 지금 이 순간의 엄마가 아니다. 잠시 후 아내는 깨달았다. 이 세상에서 '나의 것' 은 없다는 사실을. '내 것' 이라고 하는 순간 소유하려고 하고 간섭하려고 한다. 아들은 소유할 수 없는 하나의 고유한 생명체다. 그리고 어머니 역시 그 누구도 간섭하거나 소유할 수 없는 고유한 생명체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할 때 화는 생기지 않는다.

남편은 아내를 소유하려 하고 아내는 남편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 한다. 그래서 다툼이 일어나는 것이다. 서로 고유성을 인정해 주고 간섭하지 않을 때 비로소 평화가 찾아 온다. 

부모는 자식을 내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그래서 부모가 원하는 방향대로 움직여 주길 원한다. 자식은 자식의 길이 있다. 부모가 원하는 대로 판검사가 되고 의사가 되었다고 행복할까?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을까? 진정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순간 순간 잘못을 저지른다. 또한 순간 순간 잘못을 깨우친다. 반복을 거듭하면서 성숙하는 것이다. 꽃이 열매가 되고 열매가 씨가 되듯이 거듭 거듭 새로 태어 난다는 사실을.

한 번 만에 깨우침을 얻어 더 이상 잘못을 저 지르지 않는 사람이 있다. 또한 그렇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시간적인 차이만 있을 뿐 깨닫는다는 사실은 같다. 그러므로 기다려주는 아량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을 대할 때 선입견이나 어제의 그로 보지 말아야 한다. 그가 깨우침을 얻은 붓다가 되었는지 부활한 예수가 되었는지 누가 알겠는가? 누구든지 붓다가 될 수 있고 예수가 될 수 있다. 

<부활>, <다시 태어남>, <깨우침> 에 대해 명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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