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숲길을 훤하게 밝히네 산벗꽃 등불
[어두운 숲길을 훤하게 밝히네 산벗꽃 등불] - 산벗꽃 핀 뒷동산 길을 걸으며 지은 17자 짧은 시
동네길에는 벗꽃으로 뒷동산에는 산벗꽃으로 물들고 있다. 온 산과 들을 훤하게 밝힌다. 길을 걷다 보면 마치 백열등 불빛 아래를 걷는 기분이다. 겨울 내내 회색빛이었던 산은 조금씩 불그스럼한 색을 띠더니 지금은 연두색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 연두색 중간 중간에는 하얀 물감으로 찍어 놓은 듯 하다. 산벗꽃이 산 중간 중간 피어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새들이 벗나무 열매(버찌)를 먹고 버린 씨에서 발아한 것으로 추정된다.
초봄에 피는 꽃들은 대부분 잎이 나기 전에 핀다. 대표적인 것으로 매화, 산수유꽃, 복사꽃, 벗꽃, 목련, 개나리, 진달래, 살구꽃, 자두꽃 등이 있다. 잎이 먼저 나오는 거의 대부분의 나무들은 잎이 막 나오기 직전에는 붉은 색을 띤다. 그러다가 붉은 주머니가 터지면 연두색 잎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때부터는 온 산이 연두색으로 물든다. 오월 쯤 되면 진한 녹색으로 변하는데 이를 '녹음(綠陰)' 이라고 부른다.
요즘 같은 봄날은 꼭 무릉도원(武陵桃源)에 온 기분이다. 이 세상이 아닌 것 같다. 너무 아름답고 몽환적이어서 별천지에 온 것 같다. 그냥 처다만 봐도 좋다. 이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아 차!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잠시 꿈에 빠져 있었나 보다. '그래! 이 세상에 변하지 않고 영원히 그대로인 것은 없지!' 하고 잠시 잃었던 혼을 되찾는다.
이렇듯 마음은 늘 지금 여기 있지 못하고 어디론가 자꾸만 가게 된다. 가만히 지켜보면 마음은 언제나 과거 아니면 미래에 가 있다. 과거의 어느 한 때에 들어가 있거나 앞으로 원하는 어느 순간에 들어가 있다. 이럴 때는 누가 옆에서 무슨 말을 해도 듣지 못한다.
삶은 지금 여기서 순간 순간 진행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에서 가장 값진 삶을 살아야지 놓치면 그 기회가 다시 오지 않는다. 그리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므로 미리 가불해서 쓸 수 없다. 과거나 미래는 결코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후회와 절망만 안겨 줄 뿐이다. 놓친 삶은 후회를 낳고 미리 꿈꾸는 삶은 절망을 낳는다. 한 번 흘러간 물은 절대 되돌릴 수 없고 지평선은 절대 잡을 수 없는 이치와 같다. 그러므로 지금 발 담그고 있는 그 물을 느끼고 지금 발 딛고 있는 그 땅을 느끼는 것이 후회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는 삶이다.
삶은 하나 하나 살아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 속에 행복도 있고 불행도 있다.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다. 젊음이 있고 늙음이 있다. 건강이 있고 병듬이 있다. 자유가 있고 구속이 있다. 탄생이 있고 죽음이 있다. 이런 과정을 받아 들이고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숙명이기 때문이다. 우주의 섭리이기 때문에 그저 받아 들이면 된다. 반항하거나 역행하면 걱정과 근심이 따르고 궁극적으로는 불행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삶의 과정이 오면 오는 것이고 가면 가는 것이다. 그냥 그렇게 일어나는 것이다. 그저 지켜볼 뿐이다. 집착하거나 욕심낼 필요가 없다. 집착이 없으면 걱정과 근심이 없고 걱정과 근심이 없으면 행복하다.
눈 깜박 하는 순간 삶의 한 부분이 지나갔다. 들숨과 날숨 사이에 또 한 순간의 삶이 사라졌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아까운 삶이 사라진다. 순간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이 순간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자연의, 우주의 흐름과 같이 해야 한다. 바람 부는대로 물결 치는대로 흘러가야 한다. 거꾸로 흘러가기 위해 몸부림 치면 삶은 파괴된다. 그 삶은 고통이고 슬픔이고 불행이고 죽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