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덤불 속에도 봄은 오네 산복사꽃 품고] - 산복사꽃을 보고 그 느낌을 표현한 17자 짧은 시

깎아지른 산비탈 가시덤불 속에 서너 그루의 복사꽃이 핀다. 찔레나무 가시로 둘러싸인 모습이 안스럽다. 가정집의 복사꽃 보다 화려하지 않지만 맑고 깨끗한 느낌이다. 가지가 잘 정돈되지 않아 엉성하지만 자연스러워 좋아 보인다. 사람의 간섭을 받지 않아 자유스럽고 주위의 자연과 잘 어울린다. 산비탈에 태어났음을 화내지 않는다. 자신을 가둔 가시덤불에게 성내지 않는다. 주어진 삶을 그저 받아 들일 뿐이다. 청초함과 고상함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어제는 화를 냈다. 별것도 아닌 것에 화를 낸 것이 너무 후회스럽다. 그동안 정진해온 결과가 한 순간에 무너져 버렸다. 아직도 비어냄이 부족한가 보다. 배(船}를 완전히 비우지 못한 탓이다. 집착과 욕심을 완전히 벗어 던지지 못했다. 
내 뜻대로 상대가 움직여 주기를 바라는 욕심 때문에 화가 난 것이다. 상대방도 하나의 존재다. 그러므로 어떤 누구도 이래라 저래라 할 권한이 없다. 그 어떤 누구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울 권한이 있다. 
나 역시 상대방이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든 나의 존재가 간섭 받거나 흔들릴 필요가 없다. 상대방이 어떤 말을 하면 하는 것이고 어떤 행동을 하면 하는 것이다. 그냥 그렇게 듣고 보면 된다. 내가 그 말이나 행동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 나는 그저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모든 것은 머물러 있지 않고 지나가기 때문이다. 
무엇이 지나가든 비추기만 하는 거울이 되어야 한다. 거울은 절대 동요되지 않는다. 그저 지켜보고 침묵할 뿐이다. 그러므로 화를 내거나 싸움이 일어나지 않는다. 
비어 있는 배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배가 와서 부딪쳐도 화내지 않는다. 만약 배 안에 내가 있으면 부딪힌 배의 주인에게 화를 낼 것이다.

'나' 를 버려야 한다. 배 안에 사람이 없어야 한다. 부모와 학교 사회 국가에 의해 만들어진 '나' 로부터 탈출해야 한다. 진짜 나는 바로 거울이고 텅 빈 배다. 거울처럼, 빈 배 처럼 되지 않는 이상 화는 멈주지 않을 것이고 싸움으로 발전할 것이다. 
가부장적인 관념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남자라는 우월감을 던져 버려야 한다. 모든 지식을 깨끗히 씻어내야 한다. 사회와 국가의 계급이라는 개념을 지워야 한다. 오직 자연 그대로인 것만 남긴 채 다 버려야 한다.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솔직히 말해 우리가 만든 이 세상은 지식과 이성이라는 가면 속에서 살아가는 거짓된 세상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다른 사람의 눈 때문에 알량한 체면 때문에 자신의 자연적인 본심을 숨기고 살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겉으로는 도덕군자고 성인이지만 속으로는 짐승과 다를 바 없지 않는가 말이다. 

자연스러워져야 한다. 순수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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