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사촌 동생이자 제자인 아난다는 늘 부처님 곁에서 부처님이 세상을 뜰 때까지 조석으로 모시던 시봉자였다. 그는 부처님의 모든 행동을 다 지켜본다.

 

[스승께서는 슈라바스티에 머물고 계셨다. 아침 일찍 스승께서는 옷을 입고 가사를 걸치신 다음, 밥그릇을 들고 탁발(托鉢 : 바리때를 맡기다 - 승려의 공양그릇을 맡기다)하기 위해 큰 도시인 슈라바스티로 돌아가셨다. 

탁발에서 돌아와 공양(供養 : 이바지하여 기르다. - 존경하는 마음으로 음식이나 향 등을 바치는 행위)을 마치신 다음, 스승께서는 의발(衣鉢 : 옷)을 치우시고 발을 씻어시고 그분을 위해 마련된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는 몸을 곧게 펴고 앞쪽에 주의를 집중하고 앉으셨다. 그때에 많은 비구(比丘 : 남자승려)들이 스승이 계시는 곳으로 다가섰다.

그들은 스승의 발 밑에 머리를 조아려 경의를 표하고는 스승의 주변을 오른쪽으로 세 번 돈 다음에 한쪽에 가서 앉았다.]

 

아난다는 부처님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지켜보는 시봉자다. 아무것도 아닌 부처님의 행동 하나하나를 이렇게 서술하고 있는 것일까?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은 선각자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깨달음을 얻은 자는 항상 현재에 머문다. 절대 과거나 미래로 움직이지 않는다. 늘 지금여기에 집중한다. 옷을 입을 때는 옷 입는 것에만, 밥을 얻을 때는 밥 얻는 것에만, 밥 먹을 때는 온전히 밥 먹는 것에만, 발을 씻을 때는 발 씻는 것에만, 앉아 있을 때는 숨을 들이 쉬고 내 쉬는 것에만 집중한다.  부처님의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바로 삶으로부터의 자유를 얻고 영원한 지복을 얻는 길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사람들은 밥을 먹으면서 딴 생각을 하고 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른다. 무엇을 먹었는지 조차 모른다. 오늘 출근하면 누구를 만나고 회의는 어떻게 진행하고..... , 아직 오지 않은 상황에 가 있는 것이다. 또는 어제는 누굴 만났고 상사에게 욕을 얻어 먹었던 일을 떠올리고 있다.  자신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를 가만히 살펴보면 현재에 있지 못함을 금방 알 수 있다. 잠을 자도 푹 자지 못한다. 미래나 과거로 향하는 꿈을 꾼다. 그래서 깊은 잠을 자지 못한다. 다음날 일어나면 더 피곤함을 느낀다. 

한 번도  지금여기, 바로 현재에 머문 적이 없음을 알게 된다. 자, 생각해 보자. 그렇게 정신없이 바쁘고 치열하게 살았는데 삶으로부터 자유로웠는가? 행복했는가? 그렇지 않다면 뭔가 잘못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삶으로부터의 자유? 영원한 행복?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가난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없는 것인가?

질병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돈, 즉 물질이 진정한 자유를 가져다 줄까?

부자들은 다 삶으로부터 진정한 자유을 얻었을까? 그래서 행복할까? 한 번 물어보고 싶지 않은가?

이러한 질문에 눈을 감고 명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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