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양고조(梁高祖)가 금강경을 설명해 달라고
부대사(傅大士)를 초빙했다.
약속된 날이 되어 선사가 도착했다.
부대사는 단상에 올라가더니 앞에 놓인 책상을 꽝 내려쳤다.
그리고는 밑으로 내려와 아무 말 없이 떠났다.
얼마동안 황제는 꼼짝도 않고 앉아 있었다.
옆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지공(誌公)이 물었다.
"여쭙기 황송하지만 그를 이해하셨는지요?"
황제는 슬프게 머리를 가로저었다.
지공이 말했다.
"저런, 부대사가 그토록 자상하게 알려주었건만!"
원문 이해
금강경은 보석 중의 보석이다. 금강경은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말해진 것들 가운데 가장 중요 한 것 중 하나이다. 금강경에 있는 붓다의 말은 가장 소중한 것들이다.
금강경의 기본적인 관념은, '아무것도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삶은 불가해하다.
삶은 아무리 설명해도 불충분하며, 모든 철학은 매우 협소하다는 것을 증명될 뿐이다. 삶의 하늘은 너무나 광대해서 어떠한 가설이나 이론으로 그 하늘을 제한할 수 없다.
금강경의 토대는, 아무것도 말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노자의 도덕경과 같다.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 즉 말해진 진리는 더 이상 진리가 아니다. 진리를 말하면 그것은 거짓이 된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이해하란 말인가?
황제는 금강경을 읽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깨달은 사람에게 묻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금강경, 또는 그런 종류의 경전은 완전히 비논리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대사는 단상을 꽝 내리쳤다. 이것이 금강경에 대한 그의 설명이었다. 그는 이렇게 행동함으로써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가?
그 첫 번째는, 진리는 행동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언어로는 충분치 않다. 황제가 선사의 걷는 모습을 잘 관찰했다면, 거기에 금강경에 대한 설명히 있었을 것이다.
선사는 아름답고 우아하며 품위 있게 걸었다. 그의 걸음걸이에 금강경에 대한 주석이 있었다. 그는 붓다처럼 걸었을 것이다. 그 자신이 깨달음을 얻은 붓다이다. 그는 붓다처럼 깨달음의 빛을 방사하고 있었다. 그는 궁전 안에 새로운 우주를 갖고 왔을 것이다. 그것은 생동감이 넘치는 우주였다. 그의 문은 열려 있었다.
황제에게 눈이 있었다면 그는 붓다가 왔음을 보았을 것이다. 그는 지구 위를 걷고 있는 붓다였다.
다만 모습과 이름만 달랐을 뿐이다. 그는 왜 단상을 내려쳤을까? 그는 황제가 깊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황제의 의식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황제를 깨우기 위하여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그가 금강경에 대해 입을 열었다면, 그는 자신이 금강경을 이해하지 못했음을 스스로 폭로하는 격이 되었을 것이다.
금강경에 대해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금강경은 진리 자체이다. 그러므로 금강경에 대해 입을 연다면 그것은 진리에 대한 모독이 될 것이다. 그것은 신성모독이다!
금강경에 대한 주석이란 침묵 뿐이다. 황제에게 침묵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었다면, 그는 금강경을 이해했을 것이다.
그가 그렇게 갑자기 떠나버린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상의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 진리를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는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이젠 더 이상 꾸물거리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황제는 충경 받았다. 잠시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옆에 있던 지공이 "여쭙기 황송하지만 그를 이해하셨는지요?" 라고 묻는다.
이 사람 지공은 대단한 이해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선사의 행동이 암시하는 바를 이해했다. 그는 선사의 걸음걸이에서 우아함을 보았다. 그는 침묵 안에서 빛나는 깨달음의 광채를 보았다. 그는 선사의 눈이 자비로 가득차 있음을 보았다. 그는 산들바람처럼 조용하고 신선하게 다가오는 아름다움을 느꼈다. 그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황제가 안쓰러웠다.
"황제는 슬프게 머리를 가로저었다."
역사 이래,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행동하고 있다. 붓다, 예수, 차라투스트라, 크리슈나 같은 인물들이 세상에 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또한 그들을 이해하는 사람도 극소수이다. 황제는 군중의 상징이다. 황제는 다수의 대중을 의미한다.
붓다가 와서 이 세상을 거닌다. 그는 이 세상에 다른 세상을 가져온다. 그는 말로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가져온다 그러나 그대는 그것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한다.
※ 부대사(傅大士)
서은 부, 이름은 흡(翕), 무주선혜(無州善慧), 쌍림대사(雙林大士), 동양거사라고도 불리며, 동토(東土)의 유마(維摩), 미륵(彌勒)의 화신으로 추앙되며 <선혜대사어록> 4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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