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인디언은 자신의 재산이나 노동에 값을 매기지 않았다. 자신이 가진 힘과 능력으로 베풀 따름이었다. 힘들고 위험한 일에 자신이 선택되는 것을 영광으로 받아들였으며, 그것에 대해 보상을 요구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그렇다고 인디언들이 소유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물건을 훔치다가 발각되면 도둑이라는 뜻의 '와마논' 이라는 이름이 평생 동안 붙어 다니며 씻을 수 없는 오점이 되었다.
단 하나 예외는 음식을 훔치는 일이었다. 배가 고픈데 아무도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이 없으면 언제든 자유롭게 음식을 가져다 먹을 수 있었다. 인디언 공동체에는 도덕적인 규범 말고는 방범 체계가 따로 있지 않았다. 집에는 문도 자물쇠도 없었으며,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활짝 열려 있었다.
얼굴 흰 사람들은 인디언들이 천성적으로 잔인하고 복수심에 불타 있다고 헛소문을 퍼뜨렸다. 그것은 우리의 철학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다. 인디언들은 전투를 젊은이들에게 남성다움을 심어 주기 위한 하나의 놀이로 여겼다. 영토를 확장하거나 형제인 부족을 완전히 말살하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전에는 전투를 벌여도 하루 종일 서로의 대담무쌍함과 말 타는 기술을 과시하면서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서로를 죽이는 일은 극히 드물었고, 대학에서 미식 축구 시합을 하다가 부상당하는 정도밖에 다치지 않았다.
부족간에 전투가 벌어져도 누군가를 죽게 하면 그 전사는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머리를 산발한 채 30일 동안 슬픔에 잠겨 지냈다. 물론 적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 큰 죄는 아니었지만, 그렇듯 참회의 의식을 행하는 것은 떠나간 영혼을 존중하는 마음의 표시였다. 인디언들에게 무분별한 잔인함과 훨씬 야만적인 전투 방식이 생겨난 것은 얼굴 흰 사람들이 총과 칼과 독주를 가지고 온 다음부터다. 그들이 우리에게 복수의 감정과 물욕을 심어 준 장본인들이다.
부족 안에세 살인을 저지른 자는 큰 죄를 범한 것이 되기 때문에 부족 회의의 판결을 받아야만 했으며, 종종 자신의 목숨으로 죄값을 치러야 했다. 인디언들은 죄를 지었을 때 달아나거나 교묘히 법을 피하려 하지 않았다. 그 죄가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산속 깊은 곳에서 이루어졌든 한밤중에 행해졌든 아무 차이가 없었다. 인디언은 위대한 신비가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희생자 부족의 어른들과 현자들 앞에 나타나 자신의 죄를 고백했다.
죄를 저지른 이의 가족들도 그를 옹호하거나 방어하기 위해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심판관들은 모든 상황을 세심하게 살펴 그 살인이 자기방어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상대방이 심하게 감정을 자극한 나머지 일어난 일인지 명확히 확인했다. 자기방어를 위한 것이었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죄인에게 홀로 30일 동안 슬피 울라고 판결을 내린 후 풀어 주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살인자의 가까운 가족에게 그를 사형에 철할 권한을 주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족이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족에서 추방시키는 것으로 벌을 대신했다.
독한 위스키가 들어와 술 취해 난동 부리는 사람이 없던 시절, 인디언 사회에서는 고의적이고 계획적인 살인이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 인디언들은 폭력적이거나 다툼을 일삼는 사람들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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