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 중간 쯤에 작은 연못이 있다. 청둥오리, 물닭, 가마우지, 수달이 겨울을 보내고 있는 곳이다. 청둥오리와 물닭은 고향으로 돌아갔는지 며칠 째 보이지 않고 가마우지들만 남았다.

 

오늘 아침 가마우지들이 떼지어 공중을 빙빙돌며 소리를 질러댄다. 한 마리는 물 위에서 이리저리 배회하며 어쩔 줄 몰라 한다. 가만히 지켜보니 가마우지 시체 하나가 물 위에 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부부이거나 자식인가 보다. 애간장이 녹아 내리는 모습이다.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순간이다. 재주 없는 촌부가 17자 시로 가마우지를 달래 본다. 

 

'죽음' 이란 무엇인가? 를 명상케 하는 아침이다. 이 세상 어떤 생명체도 죽음을 피해 갈수는 없다. 어쩔수 없는 순리다. 육체의 활동이 멈추면 죽었다고 판단한다. 그런데 붓다와 예수 그리고 수많은 선각자들은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이 있다고 했다. 바로 '본성, 본래 의식' 이라는 것이다. 육체는 죽어도 본성은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본성, 본래 의식이 무엇인가? 생각과 마음이 없는 상태로 깨어 있음이다. 텅 빈 의식을 말한다. 순수하고 맑은 거울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다. 

 

거울은 무엇이 지나가든 지켜볼 뿐이다. 하늘은 어떤 구름이 오가던 그저 바라볼 뿐이다. 본성, 본래 의식은 거울 또는 하늘과 같다. 수많은 생각과 마음이 쳐들어 와도 지켜볼 뿐 절대로 휘둘리지 않는다. 오면 오고 가면 가는 것이다. 이 본성, 본래 의식은 육신의 죽음까지도 지켜볼 수 있다고 한다. 아직 실제적인 경험을 하지 않아서 모르겠다. 죽음 외에는 삶을 살면서 경험할 수 있다.

 

가령 배가 아프다고 하면 그 아픔에 모든 존재가 몰입되고 만다. 그래서 고통을 어찌할 줄 모르고 의식을 잃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본성, 본래 의식은 육신이 아니다'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고통에 시달리는 육신을 제 삼자가 되어 지켜본다. 본성, 본래 의식은 육신을 침대로 옮겨 아픈 배 위에 뜨거운 찜질을 한다. 점점 육신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있음을 본다. 그리고 편안하게 잠든 육신을 지켜본다.

 

본성, 본래 의식은 마술상자요 보물상자다. 만 가지 요술을 부릴 수 있고 필요할 때 얼마든지 꺼내 쓸 수 있는 보물이 가득하다. 어려운 것 같지만 쉽고 쉬운 것 같으면서 어렵다. 그러나 누구나 할 수 있다. 

 

부와 명예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얻는 길, 죽지 않는 길,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은 지켜보는 것이다. 본성, 본래 의식과의 만남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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