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삭막하던 산과 들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하고 온갖 새 소리로 가득하다. 눈을 어디다 두어야할 지, 귀는 어떤 소리를 들어야할 지, 마음은 무엇부터 해야할 지 정신없는 봄날이다. 청매화도 봐야 하고 홍매화도 봐야 하고 목련꽃도 봐야 하고 산수유꽃도 봐야 하고 수선화도 봐야 하고 하루종일 눈이 바쁘다. 뻐꾹뻐꾹 뻐꾹새 소리, 후후후 후투티 소리, 휴우우휙 휘파람새 소리, 딱딱딱 딱새 소리, 개고르 개고르 개구리 소리에 귀는 즐겁다. 

이 즐겁고 아름다운 봄날을 후회없이 보낼 것이다. 내년 봄이 다시 올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에 아름다울 때 많이 봐 둬야겠다. 봄이면 들을 수 있는 자연의 소리를 많이 들어야겠다. 지금 여기, 이 순간을 가장 아름답고 즐겁고 행복한 것들로 가득 채울 것이다. 

엇그제 오랜만에 약비가 내렸다. 봄에 내리는 비는 약비라고 한다. 산천초목에게는 약과 다름없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비가 내린 후 산과 들에는 파릇파릇 새싹들이 서로 경쟁하듯 고개를 내민다. 나도 며칠동안 텃밭을 갈고 이랑을 만들었다. 병이 들어 움직임이 좋지 않지만 봄은 나를 방 안에 가만 있게 놔 두지 않았다. 힘닿는 대로 천천히 밭을 갈고 이랑을 만들었다. 고추도 심고, 감자도 심고, 옥수수도 심고, 가지도 심고, 오이도 심고, 남는 땅이 생기면 꽃씨도 뿌릴 것이다. 

무엇을 하든 집착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꽃이 시들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도 집착이다. 꽃이 피었다가 지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지는 줄 알고 아름다울 때 최대한 즐겨야 한다. 본래 나(본성)는 꽃이 피고 지는 것에 얽매이지 않는다. 꽃이 피면 피는 것이고 꽃이 지면 지는 것이다. 본래 나(본성)는 다만 지켜볼 뿐이다. 꽃이 피면 기쁘고 꽃이 지면 허무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본래 나는 언제나 맑고 고요하기 때문이다.

먹거리를 심어 많이 거둬 들여야겠다는 것도 집착이다.  땅에다 화학비료를 주고 농약을 뿌리고 비닐을 깔아서 풀의 성장을 막는다. 이런 모든 행동들이 집착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땅에다 작물을 심는다. 작물과 풀이 같이 자라게 하되 작물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그 주위에만 풀을 맨다. 내 경험으로는 풀들이 작물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았다. 풀이 있으면 땅은 항상 촉촉하다. 아무리 가물어도 풀 밑을 파 보면 물기가 있고 촉촉 보슬하다. 뿐만 아니라 풀 뿌리 주위에는 지렁이를 비롯한 땅 속 생물들이 다양하게 살고 있다. 이들 땅 속 생물들은 땅을 부드럽게 하고 작물에게 어떤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다. 현대식 농사를 짓는 것 보다는 적게 얻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먹을 만큼은 얻을 수 있다. 먹을 만큼만 있으면 된다. 그 이상은 집착이고 욕심이다. 집착과 욕심의 결과는 근심과 걱정이란 걸 잘 알기에 집착 없는 텃밭 일이 즐겁고 행복하다.

사람과 사물과의 관계에서 집착을 버려야 함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집착은 근심과 걱정을 가져 온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 사실에 고맙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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