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기성자는 왕을 위해 싸움닭을 훈련시키는 사람이었다. 그는 훌륭한 닭 한 마리를 골라 훈련 시켰다. 열흘이 지나자 왕은 닭이 싸움할 준비가 되었는가를 물었다.

조련사는 대답했다. "아직 안 됐습니다. 아직 불같은 기운이 넘치고 어떤 닭과도 싸울 자세입니다. 공연히 뽐내기만 하고 자신의 기운을 너무 믿고 있습니다."

다시 열흘이 지나 왕이 묻자, 조련사는 대답했다. "아직 안 됐습니다. 아직도 다른 닭의 울음 소리가 들리면 불끈 성을 냅니다."

또다시 열흘이 지났으나 왕의 물음에 그는 여전히 대답했다. "아직 멀었습니다. 아직도 상대를 보기만 하면 노려보고 깃털을 곤두세웁니다."

또 열흘이 지나 왕이 묻자, 기성자는 마침내 대답했다. "이제 거의 준비가 되었습니다. 다른 닭이 울어도 움직이는 빛이 안 보이고 먼 곳에서 바라보면 마치 나무로 조각한 닭과도 같습니다. 이제 성숙한 싸움닭이 되었습니다. 어떤 닭도 감히 덤비지 못할 것이며, 아마 바라보기만 해도 도망칠 것입니다.                             

원문 이해

 

인간의 마음은 언제나 에고로 귀결된다. 가장 최종적인 결론이 에고다. 그러므로 먼저 인간의 마음이 에고로 발전하는 과정을 깊이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에고가 걸림돌이다. 그대가 더 많이 존재할수록 그대 안의 신은 그만큼 작아진다. 그대가 적게 존재할수록 그대는 더 많이 신을 향해 열린다. 만일 그대가 완전한 빈 배가 된다면, 그때 신이 그대의 손님이 될 수 있다. 그대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 어느 한 구석에도 '나' 라는 것이 남아 있지 않을 때, 오직 그때만이 신은 손님이 된다. 그때 그대는 신을 맞이할 수 있다.

그대가 그곳에 존재할 때, 그대의 모든 기도가 공허하다. 그대의 모든 영접이 거짓이다. 그대가 그곳에 존재할 때 그대는 아직 정식으로 신을 초대한 것이 아니다. 그대가 존재하지 않을 때만이 그 초대가 진실하다. 기도는 텅 빈 존재의 고요한 갈망이다. 기도의 끝은 침묵이다. 언어마저 사라진 고요한 기도, 사념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에고는 녹아서 사라진다.                

인간의 마음은 언제나 자신을 비우는 것에 반대한다. 그래서 머리가 더욱 우세해지고, 모든 차원에서 자기를 겸허히 비우는 일이 자취를 감춘 것이다. 이 시대는 신뢰 속에 자신을 내맡길 수 없기 때문에 고통받는다. 그것이 문제다. 그것이 현대인들의 생각의 근본이고 함정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계속해서 묻는다. '사랑이 무엇인가?' 인간의 머리는 사랑할 수 없다. 전쟁을 할 수는 있다. 그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인간의 머리는 사랑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전쟁의 상황에서 인간의 머리는 존재할 수 있고, 훌륭하게 기능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랑 속에서는 머리는 자신을 내맡겨야만 한다.

만일 단 하루만이라도 에고가 사라진 삶을 산다면 그대 자신도 놀랄 것이다. 신비에 사로잡힐 것이다. 수많은 생 동안 간직해 온 그 에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그것은 단 24시간 만에도 쉽게 사라진다. 왜냐하면 그것은 끊임없이 연료 재충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에고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그 속에는 지속적인 에너지가 없다.

육체를 위해서는 연료가 필요하다. 먹지 않고 마시지 않으면 그대는 죽을 것이다.           

마시지 않으면 3주일 만에 죽을 것이다. 숨쉬지 않으면 3분 만에 죽을 것이다. 육체에는 끊임없는 연료 재충전이 필요하다. 육체는 영속적인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의식에게는 연료가 필요 없다. 이 육체가 죽으면 그대의 의식은 다른 자궁 속으로 들어간다. 의식은 영속적인 현상이다. 그것은 끝이 없는 에너지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출발도 없고 도착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대가 의식과 하나가 되었을 때 그곳에 두려움이 없는 것이다. 영원한 근원에, 불멸하는 것에, 죽지 않는 것에 이르렀을 때만이 두려움은 사라진다. 죽음을 모르는 것에 접촉했을 때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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