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아무것도 발생한 적이 없으며 아무것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있는 것은 그저 존재할 뿐.
꿈속에서 나는 왕이 되었다. 나의 백성들은 온 세상에 퍼져 있었다.
나는 지배하는 사자처럼 행복한 삶을 누리면서 옥좌에 앉아 있었다.
온 세상이 나에게 복종했다.
돌아누웠을 때, 모든게 분명해졌다.
나는 사자가 아니었다.
다만, 한 마리의 당나귀, 촌스러운 바보였을 뿐.
아무것도 발생한 적이 없으며 아무것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있는 것은 그저 존재할 뿐.
원문 이해
이 말은 엄청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돌이켜 보라.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많은 일들이 일어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대는 여전히 똑같다. 의식은 똑같이 남아있다.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들은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미래에 무슨 일이 발생할 수 있겠는가? 오직 현재만이 존재한다. 과거와 미래는 꿈이다.
실체를 꿰뚫어 볼 수 있다면, 모든 노력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웃음을 터뜨릴 것이다.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불가능한 것을 시도하고 있었다. 실체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실체는 생성을 모른다. 다만 존재할 뿐이다. 실체는 미래를 모른다. 그것은 이미 여기에 있다. 그것은 항상 여기에 있어 왔다. 그것을 보기만 하면 된다. 일단 그것을 보게 되면 모든 걱정과 고통이 사라진다. 무모한 노력을 그만두고 쉴 수 있다. 긴장이 사라지고, 있는 모습 그대로의 자신을 즐기면서 행복을 맛볼 수 있다.
동양의 정의에 따르면 이렇다.
'생각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꿈이다.
아무 사념도 없다면, 그때에는 무엇이든지 간에 모두 실체다.'
바툴은 노래한다.
"나에게 알려지지 않은 한 사람, 그리고 나, 우리 둘은 함께 산다. 그러나 우리 사이에는 엄청난 거리가 있다."
그 한 사람을 바툴은 '본질적 인간' 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둘로 존재한다. 하나는 중심에 있는 본질적 인간이고, 다른 하나는 주변에 있는 후천적 인간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을 주변과 동일시한다. 어떻게 하면 중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본질적 인간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무엇인가? 주시가 그 길이다. 무엇을 하던지 간에 주시자로 남으라. 자신을 기억하라. 길을 걸을 때에도 내면에는 걷지 않는 한 사람이 있음을 명심하라. 그는 길을 걸은 적이 없으며 그대와 함께 걸을 수도 없다. 그에겐 다리가 없다. 그가 바로 본질적 인간이다. 거기가 중심이다. 그 중심을 통해 보아야 실체를 알게 된다. 바툴이 노래하는 그 실체를 알게 된다.
자신의 영원한 근원, 자신의 영원성을 보게 되면, 삶의 영원성 또한 볼 수 있다.
중심에 존재한다면, 삶의 중심을 꿰뚫어 볼 수 있다. 그러나 원 주변에 머문다면 삶의 겉모습, 삶의 주변만을 볼 뿐이다.
원둘레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마차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바퀴는 계속해서 움직인다. 그러나 바퀴의 중심은 움직이지 않는다. 바퀴는 그 불변의 중심축 위에서 움직인다. 그 부동의 중심축 위에 바퀴의 운동이 존재한다.
그대 또한 이와 같다. 그대는 중심축을 갖는다. 그 중심축은 부동이다. 그와 동시에 바퀴처럼 계속 움직이는 정체성을 갖는다. 그대는 수많은 생 동안 먼 거리를 여행해 왔다. 바퀴는 수많은 길을 알고 있다. 그러나 중심축은 항상 그 자리에 남아 있다.
두 가지 방법으로 실체를 관찰할 수 있다. 그 하나는 겉 바퀴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다. 그때에는 모든 것이 매순간 변화한다. 다른 하나의 방법은 중심축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다. 그때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이 삶으 중심축을 발견할 수 있는가? 주시에 의해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 먹을 때는 먹어라. 그러나 내면에 먹지 않는 한 인물이 있음을 잊지 말라. 음식이 몸속에 들어간다. 그러나 의식은 그것을 지켜본다.
누군가 모욕을 하면 화가 치민다. 그러나 주시자로 남는다. 모욕은 외부에서 온 것이고 분노는 원둘레에서 솟아오른다. 여전히 중심에 남아 지켜보고 있다. 누군가 원 주변을 자극했고 그곳에 분노가 인다. 분노가 먹구름처럼 애워싼다. 그러나 그것을 지켜보면서 중심축에 있다. 원 주변과 동일시되지 않는다. 모욕과 분노는 외부에 있다. 그것들은 그대와 분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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