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부터 비가 내렸다. 오랜만에 들리는 빗소리가 너무 좋았다. 창문을 통해 들려오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아침에 깨어보니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덮였다. 대나무는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허리가 완전히 굽었다. 습눈이라 잘 쓸리지도 않는다. 삽으로 긁어야 할 정도로 질척거린다. 이곳은 남쪽이라 어지간해서는 눈이 오지 않는다. 지난 겨울조차도 눈 한 번 내리지 않았다. 삼년 만에 내리는 눈이다. 그래서인지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마음이 설렌다. 한편으로는 가뭄을 다소나마 해소할 수 있어 기쁘다. 산천초목도 오늘따라 푸르러 보인다.

 

우리 인간의 삶에는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이 존재한다. 본질적인 것은 의식(본성, 참나)으로 영원하며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러나 비본질적인 것은 돈, 권력, 명예와 같이 일시적인 것들이다. 

 

우리 인간은 비본질적인 것에 너무 집착하고 본질적인 것은 잊고 산다. 사람들은 돈, 권력, 명예, 지위 등 비본질적인 것에 너무 집착해서 살고 있다. 그러나 죽을 때에는 그 모든 것을 남겨두고 가야한다. 알렉산더 같은 사람조차 빈손으로 갔다. 

붓다, 예수, 마하비라, 크리슈나, 노자, 장자 같은 사람은 본질적인 삶을 산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한다.

 

"나는 우주계(존재계, 자연)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 우주계(존재계, 자연)은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 나는 우주계(존재계, 자연)와 어떠한 투쟁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을 얻기 위해 인위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다.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우주계(존재계, 자연) 안에서 편안히 휴식하며 그저 존재할 따름이다."

 

붓다는 왕자였다. 그는 황제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게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하비라 역시 왕자였으며 황제가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부는 실망을 가져다 줄 뿐이며, 진정한 왕국은 세상에 있지 않다고 선언했다. 

외부적인 사물(부대적인 것)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을 때, 오직 의식(본성, 참나)만이 중요하게 된다. 외부적인 사물이 중요한 의미를 상실할 때 새로운 탐구의 문이 열린다. 그렇게 되면 밖을 향해 달려 나가지 않는다.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진정한 왕국은 내면에 있다. 

 

내면세계에서는 아무 노력도 필요 없다. 일단 내면세계로 들어가기만 하면 모든 일이 순리대로 일어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삶이 완벽하다는 것을. 삶을 더 좋게 개선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그때 엄청난 아름다움과 영광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내면세계는 바로 우주계(존재계,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주계(존재계, 자연)가 움직이는 대로 흐르기만 하면 된다. 그 어떤 투쟁도, 노력도 필요치 않다. 우주계(존재계, 자연)와 조화를 이루기만 하면 된다. 바로 그러한 삶이 본질적인 삶이다. 

 

자연을 보라. 모든 것이 너무나 매끄럽게 돌아가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 인간은 자연의 부분이 되려 하지 않는가 말이다. 왜 자연에 맞서 갈등을 일으키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갈등은 근심을 낳고, 근심은 고통을 가져온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 인간이 겪고 있는 고통이다.

 

비본질적인 것을 떨쳐버리고 본질적인 것을 찾아야 한다. 우주계(존재계, 자연)의 부분이 되어 조화를 이루는 본질적인 삶을 살 때 무한한 행복이 찾아온다. 

 

비본질적인 세상에서는 투쟁해야만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받은 모든 교육과 훈련은 어떻게 싸우느냐 하는 것이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폭력적이고 공격적이며 강압적인 수단을 동원해도 좋다고 교육 받고 훈련 되었다. 

그러나 본질적인 세계에서는 그저 복종하면 그뿐이다. 우주계(존재계, 자연)와의 조화 속에서 하나의 음표가 되면 된다. 원하던 모든 것이 원래 거기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비본질적인 세상에서는 '성공하지 못한 것은 전력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된다.' 라는 논리를 편다. 그러나 본질적인 세계에서는 전력을 기울이고 열심히 하는 등 에너지를 쏟아 붓는 것이 성공에 전혀 무관하다. 그것은 결코 투쟁이나 싸움의 문제가 아니다. 우주계(존재계, 자연)가 스스로 자기의 일을 하도록 내맡겨야 한다.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깊은 신뢰와 복종이 전부다.

 

이 세상 만물은 우주계(존재계, 자연)에서 와서 우주계(존재계, 자연)로 돌아간다. 올 때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으니 돌아갈 때 역시 가져갈 것이 없지 않겠는가?!

알렉산더도 그랬고, 징기즈칸도 그랬고, 나폴레옹도 그랬고, 히틀러도 그랬고, 스티브잡스도 그랬다. 죽을 때 가져갈 수 없는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돈, 명예, 권력과 같은 비본질적인 것들은 죽을 때 가져갈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깨어있는 의식(본성, 참나)은 영원한 것이다. 이 의식(본성, 참나)은 절대 죽지 않는다. 이 의식(본성, 참나)은 육체가 죽는 모습까지도 지켜볼 수 있기 때문이다.

 

비본질적인 육체는 본질적인 의식(본성, 참나)이 아니다. 의식(본성, 참나)은 육체를 제 삼자의 입장에서 지켜볼 수 있다. 의식(본성, 참나)외에는 모두 비본질적인 것이다. 그리고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동일시하지 않는다. 이렇게 동일시 하지 않으면 의식(본성, 참나)는 제 삼자의 입장에서 무엇이든지 지켜볼 수 있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지켜볼 수 있는 의식(본성, 참나)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내면 깊은 곳에 아주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눈을 감고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그 과정이 힘들고 어렵다. 그러나 열정을 갖고 들어가기만 하면 만날 수 있다. 

내면의 의식(본성, 참나)을 찾아서 영원한 행복과 자유를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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