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마조에게는 세 명의 걸출한 제자가 있었다. 그들은 남전(南泉), 서당(西堂), 회해(懷海)로 스승과 특별히 친밀한 관계를 즐겼다.
어느 날 그들은 마조를 따라 달맞이를 나갔다.
마조가 물었다.
"이런 때는 무엇을 하는 게 가장 좋겠는가?"
서당이 먼저 말했다.
"공양에 좋은 시간입니다."
회해가 말했다.
"수행하기에 좋은 시간입니다."
남전은 아무 말 없이 획하니 옷깃을 떨치며 물러갔다.
마조가 서당지장(西堂知藏)을 돌아보며 말했다.
"경(經)은 장(藏)에 들 것이다."
(마조는 지장의 이름을 갖고 농담을 하고 있다. 지장의 藏은 바구니를 의미한다. 즉, 붓다의 말을 담아 갖고 다닐 수 있는 바구니라는 뜻)
그 다음 마조는 회해를 돌아보며 말했다.
"선(禪)은 바다로 돌아갈 것이다."
(마조는 두 번째 농담을 하고 있다. 회해의 海는 바다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마조는 결론을 내리듯이 말했다.
"오직 남전만이 물외(物外)에 초연하구나."
한 승려가 마조에게 물었다.
"부처란 무엇입니까?"
"마음이 부처다."
"도(道)란 무엇입니까?"
"무심이 도이다."
그러자 승려가 다시 물었다.
"부처와 도는 얼마만큼 떨어져 있습니까?"
마조가 대답했다.
"부처는 펼친 손과 같고, 도는 주먹과 같다!"
원문 이해
붓다의 경전들은 세 바구니로 나누어진다(經, 律, 論의 三藏). 마조는 지장의 이름을 갖고 농담하면서 말한다.
"그대는 부처님의 경전을 전수하는 각자(覺者)가 될 것이다. 그대는 부처님의 경을 담을 수 있는 바구니가 될 것이다. 즉, 그대는 훌륭한 학자가 될 것이다."
회해는 수행을 하기에 좋은 시간이라고 말했다. 영적인 삶을 위한 수행은 곧 선이며 명상이다. 그의 이름 중에서 海는 바다를 의미한다. 그리고 모든 명상은 그대의 삶이라는 작은 강을 거대한 존재의 바다로 이끌어 간다. 그런 까닭에 마조는 회해에게 '그대는 바다를 풍요롭게 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결국 회해는 깨달은 스승이 되었다.
남전은 언어를 빌리지 않고도 대답한다.
"당신들은 계속해서 경전과 불성을 닦는 일에 대해 지껄이고 있으라지. 나는 떠날테니까. 여기는 내가 있을 만한 곳이 못 된다. 나는 이미 붓다이다. 나는 아무 것도 할 게 없다.
불성을 닦거나 위대한 학자가 되는 따위는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것은 보통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짓이다."
'마음이 부처다.', '무심이 도이다.'는 같은 말이다. 그는 마음을 취소하고 무심의 길을 말한다.
마음이 비는 것, 그것이 곧 무심이다. 무심은 다른 것이 아니다. 무심은 마음과 똑같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마음은 사념(思念)으로 가득 차 있느냐, 아니면 사념 없이 텅 비어 있느냐 하는 것이다. 비어 있는 마음은 무심이다. 그리고 사념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것은 마음이다.
부처와 도의 차이점은 없다. 펼친 손도 내 손이고 주먹을 쥔 손도 내 손이다. 다만 모양새가 틀릴 뿐이다. 부처와 도가 거의 같다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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