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봄에 지금의 오두막으로 이사 왔다. 예전의 오두막에서 10년 넘게 키운 수선화, 백합, 작약, 글라디올러스, 다알리아, 섬백리향.... 등도 옮겼다. 그 외 청매화나무, 홍매화나무, 철쭉, 해당화, 배롱나무, 앵두나무, 양반꽃나무, 석류나무.....등 이미 깊이 뿌리를 내린 것들은 같이 오지 못했다. 이사 들어올 분께서 그냥 두기를 간절히 원했고 나 역시 몸이 불편해 옮기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후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늘 그립고 같이 오지 못한 미안함 때문에 가슴 아프다. 오늘 아침 수선화가 촘촘히 머리를 내밀고 있는 모습을 보니 두고온 친구들이 더 생각난다. 뒷밭에 있는 홍매화 청매화는 피었는지?, 마당에 있는 명자꽂은? 박태기나무에서는 붉은 밥알이 터지기 일보직전이겠지?, 대나무 숲에는 휘파람새가 노래하고 있겠지? 휘이이익 하고 멋진 가락을 뽑으면서?
주로 구근류만 같이 왔다. 순들이 제법 자란 상태로 옮겨서인지 잘 적응을 하지 못했다. 일부는 죽기도 했다. 첫해는 이쁜 꽂을 피우지 못했다. 오늘 아침 저 생기있고 발랄한 모습을 보니 올봄에는 멋지고 아름다운 꽂을 피울것 같아 기분이 좋다. 며칠 있으면 수줍음 잘 타는 노란 꽂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도 부끄러움이 많은 꽂이라 언제나 고개를 숙이고 다소곳이 앉아 있다. 갓 시집온 새색시 같다. 내 각시 처럼.
조금 있으면 하얀 백합꽂과 검붉은 작약꽂, 분홍 글라디올러스, 빠알간 다알리아꽃, 푸르고붉은 수선화도 오두막을 채워줄 것이다.
아무것도 가진건 없지만 모든게 다 있는 오두막의 봄이 될 것이다. 풍부하진 않지만 풍요롭다. 가진게 없지만 아무것도 부러울게 없다. 더 넓은 가슴을 가진 하늘이 있고, 온갖 생명들이 숨쉬는 땅이 있고, 맑고 깨끗한 물이 있으니 이 보다 더 무엇이 부럽단 말인가!
내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히 여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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