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을 붉게 물들이던 맨드라미도 어느새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 모든 살아 있는 삶의 매 순간이 죽음이다. 이것이 자연의 방식이다. 삶은 하나의 움직임이다. 삶은 끊임 없이 흐르는 강과 같다.

또한 살아 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대립되는 것들 사이에서 이동하는 것을 뜻한다.

모든 것이 순환한다. 그것이 만물이 존재하는 방식이다. 그 대립되는 것을 순환하면서 흘러간다.

사랑은 미움, 부와 가난, 건강과 질병, 전쟁과 평화, 일과 휴식.... 이 모든 것들은 서로 대립되면서 순환한다. 자연의 법칙이 그렇다. 삶은 원을 그리며 움직인다.

그런데 우리는 이 순환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행에 빠진다. 어느 하나만을 선택하려고 한다. 선택하면 집착하게 되고 그 집착이 결국 불행을 가져온다.

어제는 나를 사랑하던 그대가 지금은 내게 화를 낸다고 하자. 내가 어제에 집착하여 이렇게 말한다.

"그대는 나를 사랑해야 한다. 어제 그대는 나를 사랑했다. 그대는 항상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찌된 일인가? 항상 나를 사랑하겠다던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말은 약속도 아니었다. 그저 기분이 그랬을 뿐이다. 영원히 나를 사랑하겠다던 그대의 느낌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 순간에 그것은 진실이었다. 그 순간에는 기분이 그랬다. 하지만 이제 그 기분은 사라졌다. 그렇게 말했던 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간 것은 간 것이다. 이제 그 일에 대해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사랑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일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불행이 싹튼다.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한 사람이 붓다를 모욕했다. 그는 붓다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붓다가 얼굴을 훔치면 말했다.

"더 말할 것이 남았는가?"

이 남자는 당황했다. 이런 식의 반응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가 돌아갔다가 다음 날 다시 찾아왔다. 그는 밤새도록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엇인가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죄책감을 느꼈다. 다음 날 아침 그가 찾아와 붓다의 발아래 무릎을 꿇고 "저를 용서하십시오." 하고 말했다.

붓다가 말했다.

"이제 누가 그대를 용서한단 말인가? 그대가 침을 뱉었던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침을 뱉었던 그대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누가 누구를 용서하겠는가? 잊어라. 이제 그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 일은 끝났다. 양쪽 모두 존재하지 않는다. 두 사람 모두 죽었다. 그러니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대도 새로운 사람이고 나도 새로운 사람이다."

부처님의 말씀처럼 모든 것이 변화한다. 아무것도 정체되어 있지 않다. 집착하는 순간 실체를 놓친다. 집착이 문제를 일으킨다. 실체는 변하는데 그것을 고정시키려 한다.

사랑과 미움은 바퀴처럼 굴러간다. 순환한다. 미워졌다가 좋아졌다가 끊임없이 순환한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이렇듯 삶은 모순적이다. 이 모순적인 삶의 법칙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사랑과 미움 어느 하나를 선택하면 문제가 생긴다. 그러면 이러한 문제로부터 탈출하는 법은 없을까? 있다. 바로 지켜보는 '주시자'가 되는 것이다. 사랑과 미움은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자연의 법칙이므로 둘 다 수용하는 법, 즉 제 3자가 되어 멀리서 지켜보는 자가 되는 것 뿐이다. 사랑이 일어나면 일어나는가보다. 미움이 생기면 생기나보다 남의 집 불구경 하듯 지켜보는 것이다. 어느 하나를 선택해서 집착하면 불행이 생기므로 선택하지 말고 가만히 지켜보라. 이때 사랑과 미움이 변화무쌍한 기분일 뿐이며 계절처럼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변하지 않는 것은 이 지켜보는 자, 즉 주시자 뿐이다.

 

https://youtu.be/ESG8i1Ntm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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