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매화와 산수유꽃은 빛을 잃어가고 목련꽃, 산벗꽃, 살구꽃, 수선화가 그 뒤를 이어 꽃망울을 펼치기 시작한다. 연못가에 핀 매화는 그믐달이 되어 물밑에 가라 앉았다. 지금 피는 산벗꽃은 정확히 말하면 체리꽃이다. 이 체리꽃은 벗꽃과에 속하지만 좀 더 일찍 핀다. 그 열매는 벗찌와는 다르다. 벗찌는 타원형이면서 검은색이지만 체리는 원형이면서 붉은색을 띤다. 서양 체리에 비해 크기는 작지만 달면서 새콤한 맛이 뒤지지 않는다. 벗찌는 쓰고 떫은 맛이 난다.
올 봄은 이상하다. 삼월 중순이 넘어가는데 휘파람새도 오지 않고 후투티새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매년 삼월 팔구일 정도 되면 대나무에서 휘파람 소리가 났었다. 후투티 역시 비슷한 시기에 내가 사는 오두막 감나무에 앉아 '후후후 후후후' 하며 짝을 부르곤 했다. 이 두 새는 아마도 열대지방에 사는 것 같은데 혹시라도 강남 지역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건지 걱정이 된다.
요즘 농촌은 자연과의 조화와는 너무 멀어졌다. 인간이 가장 큰 문제다. 자연의 순환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새벽 산책길을 가다보면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 오른다. 논이나 밭에서 불을 피우기 때문이다. 가을에 수확 후 버려진 각종 찌꺼기를 태우거나 집에서 나온 각종 쓰레기를 태운다. 봄이 되면 습관화 된 모습이다. 이 철에 산불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아무 생각없이, 왜 태워야 하는지도 모른 채 불을 내는 것을 보면 꼭 몽류병 환자 같다. 심할 때는 달려가서 확 쥐어막고 싶은 심정이다.
인간이 태우지 않아도 스스로 땅으로 돌아가 새 생명을 키우는 거름이 된다. 한곳에 모아두기만 하면 된다. 해충을 죽이기 위해 불을 놓는다고 한다. 그러면 농약은 왜 그렇게도 많이 쳐대는지 묻고 싶다. 봄부터 가을까지 왠 농약은 그리도 많이 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 기간 동안 만큼은 도시 보다 농촌의 공기가 더 고약하다. 농약철이 되면 더 깊고 깊은 골짜기로 도망가고 싶다. 지금은 농약을 치지 않으면 도저히 농작물을 키워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내가 직접 키우지 않으면 믿고 먹을 수 없다.
인간의 욕심이 근본 원인이다. 먹거리를 이용해 돈을 벌고자 하는 농사꾼과 겉으로 보기에 좋은 것만 찿는 소비자들 때문이다. 좋은 것이 있으면 좋지 않은 것도 있는 것이 자연이다. 좋은 것만 있기를 바라는 것은 인간의 욕심일 뿐이다. 자연은 항상 서로 반대되는 것들의 작용에 의해서 살아 움직인다. 낮이 있으면 밤이 있고 양이 있으면 음이 있고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위가 있으면 아래가 있고 왼쪽이 있으면 오른쪽이 있고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건강이 있으면 병이 있고 사랑이 있으면 미움이 있고 행복이 있으면 불행이 있고 젊음이 있으면 늙음이 있다. 이것이 자연계(우주계, 존재계)의 이치다. 오늘날 수많은 질병이 많은 것도,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이 따르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면 병이 오고 고통이 뒤따른다.
자연은 인간이 어떻게 해야 할 존재가 아니다. 자연은 전체이고 인간은 그 전체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부분이 전체를 어떻게 할 수는 없지 않는가. 자연은 인간이 존경하고 두려워해야 한다. 지금까지 그 어떤 인간의 힘으로도 자연을 어찌하지 못했고 앞으로 영원히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눈이 멀고 귀가 멀었다. 자연이 전하는 말에 귀를 닫아 버렸다. 탐욕이라는 마약에 취했다.
자연계(우주계, 존재계)는 지진, 화산 폭발, 폭설, 폭우, 혹한, 폭염 등을 통해서 인간에게 알려 주지만 탐욕이라는 마약에 취해 잠들어 버렸다. 이제 시간이 없다. 하루 빨리 깨어나야 한다. 욕심을 버려야 한다. 이 자연계(우주계, 존재계)는 인간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 자연에 있는 어느 것 하나라도 개인적으로 취할 수 없다. 개인 것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죽을 때 가져갈 수 없기 때문이다. 반드시 자연에 돌려주고 떠나야 한다.
자연계(우주계, 존재계)를 경외하고 복종하며 하나가 되어야 한다. 저 나무와 새들의 삶을 배워야 한다. 그들은 자연을 어찌 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저 자연의 흐름에 따를 뿐이다. 인간들 처럼 욕심 부리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나무와 새들을 우습게 보지 마라. 인간은 자연이 주는 경고를 들을 수 없지만 나무와 새들은 잘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 터키에서 일어난 지진도 인간들만 죽었다. 지진이 일어나기 며칠 전부터 새들은 알았다. 그들은 인간들에게 자연의 경고를 소리와 몸짓으로 전해 주었건만 탐욕이라는 마약에 취한 인간들은 잠이 들어 버렸다. 인간들은 눈 뜬 상태로 죽었다. 탐욕이라는 마약에 취해 눈 뜬 상태로 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한낱 새 만도 못한 것이 인간이다. 자연계(우주계, 존재계)와 하나됨에 있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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