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침 마다 산책을 할 때 지나치는 작은 산촌 마을은 지금 무릉도원이다. 분홍 복사꽃, 하얀 벗꽃, 흰 목련꽃, 붉은 목련꽃, 하이얀 자두꽃, 노오란 개나리꽃, 분홍 개나리꽃이 온 동네를 품어 안았다. 약비 같은 봄비가 이틀 째 내린다. 약비를 먹어서인지 꽃의 자태가 풍성하고 색이 아름답다.

 

무릉도원(武陵桃源)은 '속세를 떠난 별천지' 라는 뜻이라고 한다. 인간이 꿈꾸는 이상적인 세상일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을 떠난 별천지는 없다. 이 세상이 무릉도원일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다. 지금 여기, 현재를 사는 사람에게는 어떤 세상에 데려 놓아도 그곳을 무릉도원으로 만든다. 그러나 잠들어 있는 사람에게는 무릉도원에 데려 놓아도 그곳을 지옥으로 만든다. 무릉도원은 장소가 아니라 깨어남의 문제다. 

 

눈을 뜨고 있지만 잠들어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길 걸으면서 잠들어 있는 사람, 밥 먹으면서 잠들어 있는 사람, 목욕 하면서 잠들어 있는 사람, 운전 하면서 잠들어 있는 사람, 대화 하면서 잠들어 있는 사람, 벼레별 잠든 사람들을 본다.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무의식적이다. 무엇인가에 홀린 듯해 보인다. 탐스럽게 핀 노오란 민들레꽃이, 수줍은 새색시 볼 마냥 분홍빛 복사꽃이, 하얀 꽃송이를 대나무 꼬지에 꽃아 놓은 듯한 살구꽃이, 온 절간을 하얗게 둘러싼 벗꽃이, 아기 마냥 여리고 깜찍한 개나리꽃이, 봄처녀를 닮은 진달래꽃이, 모두가 인사를 건네건만 그마저 모르고 지나친다.

 

바로 눈 앞에, 바로 발 아래 무릉도원의 문이 열렸건만 엉뚱한 곳을 헤매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마음' 의 장난에 놀아나고 있기 때문에 바로 눈 앞을 보지 못하고 바로 발 아래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마음은 늘 멀리에만 존재할 수 있다. 과거나 미래에만 존재가 가능하다. 마음은 지금 여기, 현재에 존재할 수 없다. 현재에는 끼어들 틈이 없기 때문이다. 끼어드는 순간 그것은 과거가 된다.

 

가령 눈 앞에 아름다운 복사꽃이 피었고 하자. 그 꽃을 보는 순간 "아, 정말 아름답다" 라고 할 수 있는가? 절대 그럴 수 없다. 그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 순간에 무슨 말을 한다는 것은 과거의 기억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지금 여기, 현재 순간에는 어떤 기억이나 생각이 끼어들 수 없다. 그 순간에는 침묵만이 있을 뿐이다. 복사꽃과 하나가 될 뿐이다.

 

이렇듯 마음은 늘 과거나 미래를 향한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을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무릉도원, 이상세계는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여기, 현재에 깨어 있으면 그 순간 순간이 무릉도원이고 이상세계인 것이다. 눈을 뜨고 주변을 주의깊에 보라. 얼마나 많은 꽃들이 피고 있는가? 새들의 다양한 노래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앙상한 가지 끝에서 펼쳐지는 새 생명을 왜 보지 못한단 말인가?  너무 신비스럽지 않은가? 가슴이 설레이지 않는가? 즐겁고 기뻐서 춤이라도 추고 싶지 않은가? 무릉도원, 천국이 별거인가? 배 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기분 좋을 땐 춤 추면 그만이지. 

 

지금 여기, 현재를 사는 사람에게는 집착함이 없다. 만물이 변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세상 어느 것 하나라도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아름다운 꽃도 결국은 지고 만다는 것을 안다. 아름다운 꽃이 영원하기를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면 번뇌하게 되고 결국 고통이 뒤 따른다. 꽃이 피면 그 순간을 즐기면 그만이다. 다만 완전히 즐기는 것이다. 미련이 남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만 꽃이 져도 아쉬워하지 않을 수 있다. 꽃이 져야만 다시 피어날 수 있다. 피고 지는 것이 자연계(우주계, 존재계)의 흐름이다. 핌은 에너지고 짐은 쉼이다.

 

남녀간의 사랑 또한 마찬가지다. 영원한 사랑은 없다. '나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합니다' 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사랑도 변한다. 시간이 지나면 사랑이 미움으로 변한다. 또 그 미움이 다시 사랑으로 변한다. 사랑은 에너지이고 미움은 쉼이다. 쉼이 없는 에너지는 결국 지치고 만다. 이 흐름을 모르기 때문에 오늘 날 남녀간의 갈등이 많은 이유다. 사랑이 무르 익으면 반드시 미움이 온다는 것을 알고 미움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사랑이 온다는 것을 알면 갈등이 사라진다. 

 

자연계(우주계, 존재계)는 서로 반대되는 것의 어울림에 의해 움직인다. 절대로 어느 한 쪽에 치우치는 경향이 없다. 낯과 밤, 빛과 어둠, 남자와 여자, 사랑과 미움, 일과 쉼, 앞과 뒤, 왼쪽과 오른쪽, 행복과 불행, 건강과 병 어느 것 하나라도 서로 대칭되지 않는 것이 없다. 어느 한 쪽만 있게 되면 모든 균형이 깨져 결국 파멸되고 만다. 밤이 없는 낯을 생각해 보았는가? 쉼 없는 일을 생각해 보았는가? 지겹고 지쳐 죽을 것이다. 삶이란 이래서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서로 반대되는 것들 사이를 오고 가야만 살 수 있다. 

 

자연계(우주계, 존재계)를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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