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는 복사꽃과 벗꽃이 한창이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매화, 산수유꽃, 목련꽃 세상이었다. 세상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시시각각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오직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푸른 하늘이다. 하늘은 언제나 그 푸르름을 잃지 않는다. 가끔식 구름에 가릴 때도 있지만 구름이 지나가고 나면 그 푸르름은 그대로이다. 푸른 하늘은 다양한 색의 봄꽃이 피고 짐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꽃이 핀다고 들뜨거나 진다고 아쉬워하지 않는다. 늘 변함없는 푸르름으로 지켜 볼 뿐이다. 

 

마음을 비워낸다는 것이 쉽지 않다. 마음은 모든 사람이 수많은 생을 통해 쌓아올린 욕망의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그 뿌리가 너무나 깊고 깊어서 완전히 파 내기가 쉽지 않다. 이 마음 속에는 온갖 잡동사니 쓰레기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쓰레기들이 내면의 소중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내면의 소중한 공간에는 순수한 본성이 있다. 이 순수한 본성은 거울과 같다. 그런데 온갖 잡동사니 쓰레기들로 인해 더러워졌다. 이제 거울을 깨끗히 청소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마음을 비워낸다는 뜻이다.

 

내면의 본성(참나)은 하늘과 같고 거울과 같다. 하늘과 거울은 모든 것을 비춘다. 그러나 어떤 것도 하늘과 거울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사람이 오고 가고, 꽃이 피고 지고, 가난한 자가 부자가 되고, 부자가 가난하게 되고, 사랑이 미움이 되고, 미움이 사랑이 되고, 건강이 병이 되고, 병이 건강이 되고, 기쁨이 슬픔이 되고, 슬픔이 기쁨이 된다. 세상은 그렇게 오고 가지만 내면의 본성, 즉 거울은 여전히 본성(거울)으로 남아 있다.

 

마음을 비워낸다는 것은 어떤 노력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노력하면 비워내기가 더 어려워진다. 노력하지 말고 그저 지금 여기, 현재에 존재하면 마음은 저절로 떨어져 나간다. 마음은 항상 과거나 미래에만 존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순간 순간에 집중하면 마음이 끼어들 수 없다. 마음이 끼어들면 그저 가만히 지켜보면 된다.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다. 제 삼자가 되어 지켜보기만 하면 마음은 슬그머니 도망치고 만다. 

 

걸음을 걸을 때는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에 집중하고, 밥을 먹을 때는 씹고 맛을 느끼고 넘기는 것에 집중하고, 호흡을 할 때는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고, 옷을 입고 벗을 때는 입고 벗는 모든 행위에 집중하고, 일거수 일투족에 완전히 깨어있는 것, 이것이 지금 여기, 현재에 존재함이다.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면서 과연 얼마나 깨어있는 상태로 존재할까? 대부분의 시간을 무의식적으로 산다는 것을 알면 놀랄 것이다. 한 끼의 식사라도 온전히 깨어있는 상태에서 했는가? 한 발자국이라도 깨어있는 상태에서 걸었는가? 신발을 신고 벗을 때 깨어있는 상태에서 신고 벗었는가? 혹시 뭔가에 바빠서 아무렇게나 구겨 신고 내 던지듯이 벗지는 않았는가? 자신의 숨소리를 깨어있는 상태에서 듣고 느껴 보았는가? 이처럼 모든 행동 하나 하나를 되짚어 보면 아마도 많은 것을 놓쳤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순간 순간에 다른 곳에 가 있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그 다른 곳은 다름 아닌 과거 또는 미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그 다른 곳을 향해 열심히 살았고 여전히 살고 있지만 삶은 전혀 나아진 것이 없다. 그곳은 바로 손에 잡을 수 없는, 즉 실재가 아닌 허상, 허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이 나아지기는 커녕 절망하게 되는 것이다. 실재하는 것은 지금 여기, 현재 뿐이다. 지금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지금 여기, 현재 밖에 없다. 과거나 미래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만질 수 없고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허상에 집착함으로써 결국은 절망하게 되는 것이다.

 

저 세상, 천국, 극락, 천당, 하늘나라는 없다. 지금 여기, 현재를 제대로 살지 못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허구의 세상이다. 이 세상이, 지금 여기, 현재가 바로 천국이고 극락이고 천당이고 하늘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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