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마침내 수부티가 이 가르침에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렸다. 그가 눈물을 닦고 나서 스승께 말씀드렸다. "훌륭한 일입니다. 스승이시여. 참으로 경탄할 일입니다. 선서이시여. 여래께서 이 법문을 설하신 것은 얼마나 훌륭한 일입니까? 이 법문을 듣고 제게 지혜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실로 인식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깨달은 분들은 모든 인식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수부티여, 이 법문을 듣고 놀라지 않고, 겁내지 않고, 두려움에 떨지 않는 사람들은 더할 나위없이 훌륭한 살람들인 것이다. 또한 수부티여, 여래에게 있어서 인내의 완성은 실은 완성이 아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수부티여 일찍이 가리왕(歌利王)이 나의 두 팔과 두 다리의 살을 도려낼 때에도 나에게는 자아라는 생각, 존재라는 생각, 영혼이라는 생각, 개아라는 생각이 없었다. 만일 그때 나에게 자아라는 생각이 있었다면 적개심이 일어났을 것이다.

또한 수부티여, 보디사트바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보시를 행해야 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수부티여, 이 <살아 있는 존재>에 대한 인식은 다만<인식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여래가 <살아 있는 존재들>이라고 설한 모든 것들은 실로 살아 있는 존재들이 아니다. 왜 그런가? 여래는 진실대로 말하며 진리를 말하며 있는 그대로 말할 뿐, 다른 것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래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원문 이해

 

수부티는 말한다.

"당신의 현존, 당신의 자비로운 가르침, 당신의 사랑, 당신의 우아함이 제 안에 지혜의 싹을 틔웠습니다. 이 법문이 제가 진리를 볼 수 있는 눈과 통찰력을 주었습니다.

수부티는 계속 말한다.

"그러나 스승님께 상기시켜 드리건데, 이것은 실로 인식이 아닙니다. 인식할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순수한 지혜입니다."

앎이 일어났지만 아는 자가 없다. 알려진 것도 없다. 다만 앎이 일어났을 뿐이다. 그것은 순수한 앎이다. 거기에는 아는 자와 알려진 것, 그리고 앎이라는 구분이 없다. 그것은 그저 앎이다.

"이제 저는 '깨달음을 얻은 자는 모든 인식에서 벗어났다.'고 말하는 뜻을 알겠습니다. 인식이란, 인식하는 자와 인식되는 대상을 필요로 합니다. 관찰이란, 관찰자와 관찰의 대상을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깨달음을 얻은 분들에게는 이 모든 이원성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오직 하나가 있을 따름입니다."

"내 안에 지혜가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을 파악하고 이해할 내가 거기에 없습니다. 나는 다만 텅 비어 있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지혜가 일어났습니다. 나는 보았습니다. 그러나 거기 보는 자가 없습니다."

   

붓다는 수부티에게 오래된 전생의 경험을 말하고 있다. 가리왕이 그의 팔다리에서 살을 도려내던 일에 대해 이야기 한다.

붓다는 이렇게 말한다.

"그 당시 내 팔다리의 살점이 베어지고 혀와 눈알이 뽑혀 나갈 때에도 나는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내 안에 그 어떤 '나'도 일어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거기 그 광경을 보고 있는 자가 없었다. 그에 의해 다칠 자가 없었다. 만일 그때에 '나'라는 생각이 일어났다면 원한이 뒤따라 일어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를 파괴하고 있는 왕에 대해 분노가 일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분노하지 않았다. 거기 분노가 없었다."

에고는 분노를 가져온다. 분노는 에고의 그림자이다. 에고는 공격성과 폭력을 불러온다. 에고가 사라지면 모든 폭력이 사라진다. 에고가 완전히 사라져야만 인간은 사랑이 될 수 있다.

붓다는 말한다.

"나는 오직 있는 그대로의 것을, 야타 부탐(yatha bhutam)을 말했을 뿐이다. 나는 그 밖의 다른 것을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의 말이 그렇게 역설적이고 비논리적인 것이다. 진리는 논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논리를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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