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언젠가 나는 이렇게 들었다.
스승께서는 슈라바스티에 머물고 계셨다.
아침 일찍 스승께서는 옷을 입고 가사를 걸치신 다음,
밥그릇을 들고 탁발(托鉢) 하기 위해 큰 도시인
슈라바스티로 들어가셨다.
탁발에서 돌아와 공야(供養)을 마치신 다음,
스승께서는 의발(衣鉢)을 치우시고
발을 씻어시고
그분을 위해 마련된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는
몸을 곧게 펴고
앞쪽에 주의를 집중하고 앉으셨다.
그때에 많은 비구(比丘)들이 스승이 계신 곳으로 다가섰다.
그들은 스승의 발 밑에 머리를 조아려 경의를 표하고는
스승의 주변을 오른쪽으로 세 번 돈 다음에
한쪽에 가서 앉았다.
원문 이해
이 경전은 붓다의 훌륭한 제자 아난다에 의해 기록되었다. 이 경전에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아난다가 '붓다가 이렇게 말했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단지 '나는 이렇게 들었다." 라고 말한다. 그 차이점은 실로 대단하다.
"내가 어떻게 붓다가 이야기한 것을 말할 수 있겠는가?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들은 바가 전부이다. 붓다가 말한 것은 오직 그분만이 안다. 그분이 의미한 바는 그분만이 안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들은 바가 전부이다. 나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그분은 무엇인가 다른 것을 의미하셨을지도 모른다. 내가 몇 개의 단어를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또는 내가 무의식중에 임의대로 몇 개의 단어를 슬쩍 끼워 넣었을지도 모른다."
이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순간순간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에 대한 묘사가 반복되고 있다. 쓸데없는 중복일 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아난다가 말하려는 것은, 붓다가 큰 일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는 것처럼 사소한 일에 대해서도 똑 같이 주의를 쏟는다는 것이다. 붓다에게는 사소한 일도 없도 큰 일도 없다. 모든 일이 한 가이다.
'그는 밥그릇을 들 때에도 신을 대하듯이 정중하게 대한다. 가사를 걸치거나 옷을 입을 때에도 그는 매우 주의 깊다. 그는 전적으로 깨어있다. 그는 기계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옷을 입을 때 기계적으로 입는다. 그대의 마음은 계속해서 이 방향 저 방향으로 달음박질 친다. 목욕을 할 때에도 목욕을 무례하게 대한다. 그대는 거기에 있지도 않다. 어딘가 다른 곳에 가 있다. 음식을 먹을 때 음식을 무례하게 대한다. 그대는 거기에 없다. 다만 음식을 입 안으로 밀어넣고 있을 뿐이다. 모든 일을 습관적이고 기계적으로 행한다. 그러나 붓다는 어떤 일을 할 때 전적으로 거기에 있다. 그는 다른 곳으로 가지 않는다.
이렇게 자잘한 일들도 기록할 가치가 있다. 그 모든 일이 깨달음이라는 특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붓다는 매순간 깨어있는 의식으로 산다. 무슨 일을 하든 관계없다. 무슨 일을 하든 그는 매순간 그 일에 주의를 기울인다. 어떤 몸짓을 할 때, 그는 그 몸짓 자체가 된다. 미소 지을 때, 그는 전체적으로 미소짓는다. 말할 때, 그는 그 말 자체가 된다. 그리고 침묵할 때에는 완벽하게 침묵한다.
붓다와 같은 이를 지켜보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축복이다. 그의 걸음걸이, 앉음새, 몸짓, 그리고 어떻게 그대를 바라보는지 지켜보는 것 자체가 커다란 은총이다. 그때에는 매순간이 빛나는 깨달음의 순간이다. 그래서 아난다는 이토록 자잘한 일들까지 전하는 것이다. 붓다가 들어와 옷을 정돈하고, 발을 씻고, 그를 위해 마련된 자리에 앉아 몸을 곧게 펴고, 앞쪽에 주의를 집중하고 앉았을 때, 거기에는 거대한 침묵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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