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그때에 장로 수부티(須菩提)가 그 대중들 곁으로 와서 앉았다.

그 다음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웃옷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두 손을 모아 스승께 합장했다.

그리고는 스승께 이렇게 여쭈었다.

"스승이시여, 놀라운 일입니다. 참으로 경탄할 일입니다.

선서(善逝)이시여.

얼마나 많은 보디사트바들이, 그 위대한 존재들이

여래(如來)께서 베풀어 주시는 최고의 은덕에 의해

도움을 받았는지!

그런데 스승이시여, 이미 보디사트바의 길로 들어선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나아가야 하며,

어떻게 생각을 다스려야 합니까?"

이 말을 듣고, 스승께서 수부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니 수부티여, 주의를 기울여 잘 들어라. 보디사트바의 길에 뜻을 둔 사람은 이와 같이 생각을 일으켜야 한다.

'무릇 생명체의 세계(衆生界)에 속하는 모든 것들,

존재하는 이 모든 중생을

나는 열반의 세계로 인도해야 한다.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무여열반(無餘涅槃)의 세계로 인도해야 한다.

그러나 무수한 중생을 열반의 세계로 인도했다 하더라도 실은 어는 것 하나 열반으로 인도되지 않았다.'

어째서 그런가?

만일 보디사트바가 '중생'이라는 관념을 가지면 그것은 진실로 보디사트바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째서일까?

만약 그에게 자아라는 생각, 중생이라는 생각, 생명있는 영혼이라는 생각,

또는 개아(個我)라는 생각이 있으면 그는 보디사트바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문 이해

 

수부티는 거의 깨달음에 가까이 간 사람이다. 그는 보디사트바이다. 보디사트바는 붓다가 될 준비가 된 사람, 거의 붓다의 경지에 근접한 사람이다. 보디사트바는 거의 깨달음에 도달했으면서도 사람들을 돕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이쪽 기슭에 남아있으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선서(善逝)는 저쪽 기슭에 도달한 자를 말한다. 수부티는 이쪽 기슭에 있지만 붓다는 저쪽 기슭에 있다. 수부티는 그것을 이해할 만한 경지에 도달했다. 그는 저쪽 기슭을 볼 수 있다. 저쪽 기슭에 서 있는 붓다를 볼 수 있다.

 

수부티는 묻는다.

"보디사트바가 되기로 결심한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저쪽 기슭에 대한 유혹이 너무 강합니다. 저쪽 기슭이 강력한 힘으로 우리를 잡아당기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쪽 기슭에 어떻게 서야 합니까? 우리는 사람들을 돕고 싶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도울 수 있습니까? 저쪽 기슭이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자석처럼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이쪽 기슭에 설 수 있는 방법을 일러 주십시오. 어떻게 하면 이쪽 기슭에 다시 뿌리내릴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십시오. 우리는 이미 뿌리뽑혔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 뿌리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에 붓다가 대답한다.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 수부티여, 존재하는 모든 것들 - 남자, 여자, 동물, 새, 나무, 바위까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다. '나는 그들 모두를 열반으로 인도하겠다.'고 결심해야 한다. 보디사트바의 길에 뜻을 둔 사람은 이와 같이 생각을 일으켜야 한다. 그대는 살아있는 모든 존재를 저쪽 기슭, 피안의 세계로 인도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불행은 허구라는 것을, 따라서 그대의 구원도 허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에게도 자아가 없으며 그대에게도 자아가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니 잊지 말고 가슴에 새겨라. 그대가 사람들을 돕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대 자신을 위대한 구조자로 생각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다시 굴러떨어질 것이다. 다시 이 세상에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이다. 그러니 두 가지 사실을 잊지 말고 명심하라. 그대는 커다란 결의를 굳히고

 

이쪽 기슭에 남아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쪽 기슭으로 끌려가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는 한편, 이 세상에 다시 뿌리를 내리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그대는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할 것이다. 그대는 자신을 파괴할 것이고, 다시 꿈속에 빠질 것이다.

그러니 수부티여, 이 두 가지를 명심하라. 먼저, 그대는 살아있는 모든 중생을 저 피안의 세계로 데려가야 한다. 그러면서도 아무도 중생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들도 그대도 중생이 아니다. 모든 에고는 허구이며 환상이다. 항상 이것을 명심하고 커다란 결의로 나아가라. 사람들을 도와 건너편 기슭에 대해 눈 뜨게 하라. 그들은 이미 그곳에 있다. 그대는 다만 그들을 일깨우고 주의를 기울이게 하면 된다. 그러나 그 일에 휘말리지는 말라. 구세주가 되지 말라. 이 두 가지를 항상 잊지 말라."

LIST

원문

 

언젠가 나는 이렇게 들었다.

스승께서는 슈라바스티에 머물고 계셨다.

아침 일찍 스승께서는 옷을 입고 가사를 걸치신 다음,

밥그릇을 들고 탁발(托鉢) 하기 위해 큰 도시인

슈라바스티로 들어가셨다.

탁발에서 돌아와 공야(供養)을 마치신 다음,

스승께서는 의발(衣鉢)을 치우시고

발을 씻어시고

그분을 위해 마련된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는

몸을 곧게 펴고

앞쪽에 주의를 집중하고 앉으셨다.

그때에 많은 비구(比丘)들이 스승이 계신 곳으로 다가섰다.

그들은 스승의 발 밑에 머리를 조아려 경의를 표하고는

스승의 주변을 오른쪽으로 세 번 돈 다음에

한쪽에 가서 앉았다.

 

 

 

 

 

원문 이해

 

이 경전은 붓다의 훌륭한 제자 아난다에 의해 기록되었다. 이 경전에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아난다가 '붓다가 이렇게 말했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단지 '나는 이렇게 들었다." 라고 말한다. 그 차이점은 실로 대단하다.

"내가 어떻게 붓다가 이야기한 것을 말할 수 있겠는가?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들은 바가 전부이다. 붓다가 말한 것은 오직 그분만이 안다. 그분이 의미한 바는 그분만이 안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들은 바가 전부이다. 나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그분은 무엇인가 다른 것을 의미하셨을지도 모른다. 내가 몇 개의 단어를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또는 내가 무의식중에 임의대로 몇 개의 단어를 슬쩍 끼워 넣었을지도 모른다."

이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순간순간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에 대한 묘사가 반복되고 있다. 쓸데없는 중복일 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아난다가 말하려는 것은, 붓다가 큰 일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는 것처럼 사소한 일에 대해서도 똑 같이 주의를 쏟는다는 것이다. 붓다에게는 사소한 일도 없도 큰 일도 없다. 모든 일이 한 가이다.

'그는 밥그릇을 들 때에도 신을 대하듯이 정중하게 대한다. 가사를 걸치거나 옷을 입을 때에도 그는 매우 주의 깊다. 그는 전적으로 깨어있다. 그는 기계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옷을 입을 때 기계적으로 입는다. 그대의 마음은 계속해서 이 방향 저 방향으로 달음박질 친다. 목욕을 할 때에도 목욕을 무례하게 대한다. 그대는 거기에 있지도 않다. 어딘가 다른 곳에 가 있다. 음식을 먹을 때 음식을 무례하게 대한다. 그대는 거기에 없다. 다만 음식을 입 안으로 밀어넣고 있을 뿐이다. 모든 일을 습관적이고 기계적으로 행한다. 그러나 붓다는 어떤 일을 할 때 전적으로 거기에 있다. 그는 다른 곳으로 가지 않는다.

이렇게 자잘한 일들도 기록할 가치가 있다. 그 모든 일이 깨달음이라는 특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붓다는 매순간 깨어있는 의식으로 산다. 무슨 일을 하든 관계없다. 무슨 일을 하든 그는 매순간 그 일에 주의를 기울인다. 어떤 몸짓을 할 때, 그는 그 몸짓 자체가 된다. 미소 지을 때, 그는 전체적으로 미소짓는다. 말할 때, 그는 그 말 자체가 된다. 그리고 침묵할 때에는 완벽하게 침묵한다.

붓다와 같은 이를 지켜보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축복이다. 그의 걸음걸이, 앉음새, 몸짓, 그리고 어떻게 그대를 바라보는지 지켜보는 것 자체가 커다란 은총이다. 그때에는 매순간이 빛나는 깨달음의 순간이다. 그래서 아난다는 이토록 자잘한 일들까지 전하는 것이다. 붓다가 들어와 옷을 정돈하고, 발을 씻고, 그를 위해 마련된 자리에 앉아 몸을 곧게 펴고, 앞쪽에 주의를 집중하고 앉았을 때, 거기에는 거대한 침묵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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